언론보도

길바닥은 나의 힘 ‘로드스쿨러’가 간다
학교 벗어나 길에서 삶을 배우는 청소년들… 다양한 체험 공간에서 소통의 기쁨

 

‘경보’는 오늘도 길에서 배운다.

전국 자전거 여행 8일째, 9월23일 경보는 포항에 있었다. 서울, 여주, 원주, 제천, 춘양, 울진, 영덕 그리고 포항. 경보가 친구와 함께 주로 자전거를 타고 때로 버스를 이용해 거쳐온 길이다. 경보와 친구는 집을 떠나 보낸 일곱 번의 밤 중에 다섯 번을 아는 이의 집에서 보냈다. 그들을 재워준 사람 중엔 유치원 친구도, 귀농한 어른도 있었다. 경보는 이들을 만나서 얘기도 들었고, 일손도 거들었다. 이전부터 부지런히 여행을 기획하고 사람을 만났던 덕분에 전국 곳곳에 그의 지인이 있다. 자전거길에서 경보는 당초 떠나온 이유대로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생각한다. 경보에게 길은 오래된 학교다. 벌써 6년이 넘었다. 스무 살의 경보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떠났다. 그동안 배워야 할 많은 것을 길에서 배웠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학생들이 걷기 수업으로 한강변 선유도 공원에 나왔다. 공교육 체계 안에 있었다면 누리기 어려운 자유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18살 보라의 8개국 여행

 

학교를 떠나면서 교과서로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 경보는 “또래들이 교과서를 배우고 있을 때에 나는 친구들과 놀고 여행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탈학교 청소년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만든 ‘민들레 사랑방’(이하 민들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를 배웠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했다. 경보는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가지를 보면서 선택하는 삶을 원했다”고 말했다. 때로 친구결핍증에 걸리기도 했지만, 몸으로 배우는 공부에 후회는 없었다. 그래서 또다시 길을 나섰다. 그는 “현지에 가서 삶을 보아야 배우는 것들이 있다”며 “여행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찾는 길”이라고 말했다. 경주, 거창, 장수, 함양, 전주, 서천, 태안 그리고 임진각, 또다시 남해안. 경보가 이번 가을에 자전거로 누빌 길이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진짜 길이 보인다”고 웃으며 말했다.

 


보라도 떠나지 않고는 배움을 지속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2007년 고등학교 1학년 보라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지 않으면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 보라는 꼼꼼한 여행계획을 짜서 부모님을 설득하고, 용기를 내서 학교를 떠났다. 그렇게 18살 보라의 여행은 인도·티베트·네팔 등 8개국을 돌며 이어졌다. 보라는 티베트의 탁아소 ‘록빠’에서 아이를 돌보고, 인도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죽음을 앞둔 이들을 만나며 삶을 배우고, 역사를 알았다. 뜻밖에 보라는 인도에서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 아주를 만났고, 네팔에선 태은이와 같이 트레킹을 했다. 이렇게 길에는 길에서 배우는 동지가 있었다. 8개월 동안 아시아를 주유한 보라의 경험은 ‘열여덟 살 보라의 로드스쿨링’이란 부제가 붙은 책 <길은 학교다>(한겨레출판)로 묶여 나왔다.
 

로드스쿨링(Road Schooling), 그들이 스스로 발명한 신개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이름 없는 존재가 자신을 “꽃”이라, 아니 “로드스쿨러”라고 불렀다. 10월 말 도서출판 ‘또하나의문화’에서 출간될 예정인 <로드스쿨러>에는 이름의 탄생 비화가 실려 있다. 하자센터에서 ‘창의적 글쓰기’ 수업을 마친 보라가 ‘어딘’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김현아 교사에게 물었다. “어딘, 난 내가 뭔지 모르겠어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면 사람들은 내게 ‘홈스쿨러’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홈스쿨링이라면 왠지 극성맞은 부모님이 자기 계획을 가지고 시키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거든요. 그렇다고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래요. 탈학교 청소년이라면 왠지 피어싱 한두 개쯤 해주고 개성이 좀 있어줘야 할 거 같은데 난 그것도 아니거든요. 아, 정말 나는 내 자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난 집보다는 오히려 길에서 먹고 자고 배운단 말이에요!” 어딘이 웃으며 답했다. “그러면 길에서 공부하니까 로드스쿨러네.”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한강변 선유도 공원까지, 매일 오전 로드스꼴라 학생들은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몇 학년 몇 반’ 신분 증명 없는 아이들

 

그리하여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산 개념어 ‘로드스쿨러’가 탄생했다. 하여튼, 로드스쿨러는 응전의 결과다. 일찍이 탈학교 청소년을 추궁하는 질문이 도처에 있었다. “몇 살이니?” 대신에 “몇 학년이니?”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또 물었다. “홈스쿨링하겠네?”
 

교육인적자원 통계 서비스에 바탕하면, 2007년 전국의 초·중·고에서 학업을 그만둔 학생은 7만3494명. 여기에서 대안학교에 등록한 4500여 명 등을 빼면 6만여 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로드스쿨러>에서 재인용). 더구나 추이를 보면 이들의 수는 해마다 늘어간다. 그런데 6만여 명 중에 과연 부모가 선생님이자 매니저가 되는 홈스쿨링이 가능한 가정의 아이가 얼마나 될까?
 

질문은 성찰을 부른다. 몇 학년, 몇 반이란 신분 증명이 없는 아이들은 성찰에 이른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하여 얻은 성찰적 대답의 하나가 ‘로드스쿨러’인 것이다. 잠시만, 보라가 탈학교 청소년들을 인터뷰해 만든 다큐멘터리 <로드스쿨러>엔 명절증후군이 나온다. 닥쳐올 상황을 몸으로 아는 탈학교 청소년은 일부러 바쁘게 집안일을 도운다. “요즘 뭐하고 지내니?” 친척의 친절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절박한 인정 투쟁을 벌인다. 다큐멘터리에서 한 청소년은 “나를 막아줄 방어막은 유명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며 “추석 전에 내 책이 나오길 정말로 바랐다”고 말한다. 그러니 섣부른 질문은 이제 그만.

 

죽은 관광지도 대신 살아 있는 로드맵

 

다시 배움의 경계를 허무는 로드스쿨러의 정의로 돌아가보자. “로드스쿨러-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 공간을 넘나들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또는 스승이 있는 공간이면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터라는 생각을 하는 자기 주도 학습자들이 스스로를 명명하는 이름.”(<길은 학교다>) 그렇게 로드스쿨러는 ‘혼자 공부하는 사람’ ‘여행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란 정의를 넘는다.
 

다행히 보라에겐 ‘고글리’로 불리는 ‘또 하나의 준거집단’이 있었다. ‘고글리’는 ‘고’정희청소년문학상을 통해 만나 ‘글’도 쓰고 문화작업도 하는 ‘리’(마을)라는 이름의 줄인 말이다. 이제 로드스쿨러의 원조라 할 만한 고글리의 탄생 비화다.

태초에 로드스쿨링의 원형인 ‘신나 여행스쿨’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은 가본 경주는 지루한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글리 청소년들에게 지루한 경주는 섹시한 신라가 되었다. 우선 이들은 석 달 동안 도서관 등에서 신라의 흔적을 뒤졌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이어진 일주일의 경주 답사. 모두 저마다의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열성 ‘촛불소녀’였던 보라는 향가 <안민가>를 골랐다. 보라는 <길은 학교다>에 “충담사가 경덕왕에게 <안민가>를 지어 올리기 직전에 다녀왔다던 경주 남상의 연화대좌를 찾았다”고 썼다. 이렇게 역사의 흔적을 느끼니 오래된 향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고글리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신라의 왕조가 보여. 그러니까 그 시대에 이 향가들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말이야”라고. 그렇게 이들은 죽은 관광지도 대신에 살아 있는 향가맵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일러스트로 손에 잡힐 듯한 신라인을 그렸다. 이렇게 이들의 로드스쿨링은 문화 작업으로 이어졌다. 고글리의 멘토인 어딘은 “향가에 드러난 시대상과 현재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모든 규제는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것도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고글리의 로드스쿨링 경험을 모은 책이 <로드스쿨러>다.
 

올해엔 로드스쿨링을 하는 대안학교도 생겼다. 하자센터와 여행협동조합 ‘맵’(MAP)이 손잡고 올해 3월에 시작한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영어 로드(Road·길)에 라틴어 스꼴라(Schola·학교)를 더한 말이다. 고글리의 경험을 살려 어딘이 대표교사를 맡았다. 9월22일 오전 11시, 로드스꼴라 아이들이 길을 나섰다.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출발해 한강변 선유도 공원에 이르는 걷기 수업이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18살 동갑내기 산소와 삐삐는 지난 학기에 했던 전북 진안 마을 만들기(한 달 동안 머물며 지역 여행 코스·지도 등을 만든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산소는 진안에서 도보여행 코스 개발팀, 삐삐는 가이드북팀에서 일했다. 이들은 열흘 동안 지리산에서 진안까지 200km의 숲길도 걸었다. 삐삐가 “시야가 확 트이면 (길이 멀어 보여) 좀 절망적”이라며 웃자, 산소는 “가장 걷기에 힘들었던 날에 진짜 내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엔 ‘백제의 길, 백제의 향기’를 주제로 강의가 이어졌다. 이번 학기의 주제는 ‘백제’. 어딘이 사전 답사를 다녀온 일본 속 백제 얘기를 사진과 함께 들려줬다. 이들은 10월에 먼저 공주·부여 등으로 답사를 다녀온 다음에 일본으로 떠날 계획이다. 강의가 끝날 무렵엔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는 연극·영상·가이드북팀으로 나누려 했는데, 삐삐가 조형물팀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누군가 “하자상 9층 철탑”이라고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가장 어린 15살 ‘푸름’이부터 대학을 2년 다니다 온 21살 ‘쭈’까지,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아이들은 로드스꼴라를 통해서 이렇게 여행 기획자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2년 4학기 과정을 거치고 1년을 맵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아이들은 “여행을 하면서 사는 삶을 꿈꾼다”고 입을 모았다.

 

 

 
대안교육 공동체 ‘민들레 사랑방’에서 탈학교 청소년 동주, 민하, 윤지(왼쪽부터)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자기만의 시간표로 주도적 학습

 

로드스쿨러는 낭만적인 이름이 아니다. 로드스쿨러의 길은 따라가면 목적지에 이르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끝없는 갈림길에서 외롭게 선택하고, 없는 길도 만들어가야 한다. 이미 길을 가본 ‘산’은 <로드스쿨러>에서 이렇게 충고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시간표를 짜라고. “나의 학교는 내가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를 나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강요된’ 이유가 없으니 ‘산’의 경험처럼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야속하기도” 하다. 산은 굳이 미래·직업과 연관짓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다음은 자신만의 네트워크 만들기. 산의 글에 바탕하면, 홈스쿨러와 로드스쿨러의 차이는 단순히 집과 거리, 공간의 차이만이 아니다. 로드스쿨링은 “길 위에서 하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행, 아르바이트, 연애 등이 다 공부”다. 이어 그는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고 때론 날선 평가도 서슴지 않을 친구 또는 동료”가 반드시 있었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이렇게 스스로 내비게이션이 돼서 목표를 정하고 경로를 만들어야 하는 로드스쿨러에겐 친구가 길이고, 멘토가 길이고, 도서관이 길이고, 평생이 길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이 놀고 공부하는 민들레에는 자기만의 시간표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 올해 대안학교를 그만둔 열여섯 윤지가 만든 시간표엔 책읽기·글쓰기뿐 아니라 장사도 있다. 윤지는 월요일마다 대안교육기관인 ‘틔움 센터’에서 하는 장사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윤지는 친구와 둘이서 와플을 만들어 파는 일을 골랐다. 물론 장사는 녹록지 않다. 윤지는 “장사할 장소 섭외도 우리가 해야 하는데 처음엔 세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서울 천호동 등 세 곳에서 곧 와플 장사를 시작한다. 와플을 만드는 법에서 손님을 대하는 일까지, 장사를 하면서 윤지는 쑥쑥 자랄 것이다. 윤지는 이미 지난해 대안학교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800km 길을 45일 동안 걸었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서 언젠가 5개 국어를 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래서 윤지는 영어학원도 다닌다.
 

열다섯 민하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재능도 찾아가고 있다. 주로 집에서 문제집을 풀다가 모르는 문제는 부모님에게 물어본다. 민하가 좋아하는 일은 빵을 굽고, 퀼트를 만드는 수작업. 요즘엔 목공도 배운다. 이렇게 민하는 학교 밖 공부를 통해서 흥미와 재능을 발견했다. 민하는 민들레에서 하는 철학 공부도 좋아하는데 ‘나는 누구인가’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홈스쿨링과 로드스쿨링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보완의 관계다. 열아홉 동주는 일을 통해서 관계를 배웠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동주는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부엌’에서 석 달을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제는 요리학원을 다닐 계획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귀기 힘들어했던 동주는 민들레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며 서서히 변했다. 이제는 언행이 조금 어눌한 열세 살 동생의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가 될 만큼 관계에서 자신감도 얻었다. 탈학교 청소년 인경은 <로드스쿨러>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살 길을 만들어야 하기에 탈학교 청소년에게 삶과 공부와 일은 별개일 수 없으며 이들은 절실하게 그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개척 못하면 위험한 길

 

스무 살 보라의 시간표엔 다시 학교가 들어 있다. 보라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09학번 학생이 됐다. 원래 꿈이던 글을 쓰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기 위해 학교로 간 것이다. 보라는 “여행 자체보다는 여행에서 돌아와 내가 어떻게 사는지에 여행이 끼친 영향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학교 밖으로 나갔던 보라는 여행의 경험을, 소수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보라는 여전히 자신이 로드스쿨러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간표에 학교가 있거나 없거나, 그것은 잠시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로드스쿨러는 초등학생, 대학생처럼 학교가 부여한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명명한 이름이다. 이것이 로드스쿨러의 두 번째 정의다. “너를 키운 건 팔 할이 길바닥”, 누군가 보라에게 했다는 이 말을 자신의 얘기로 느끼는 모두가 ‘로드스쿨러’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갈 자신이 없는 사람에겐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원문보기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58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