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관리자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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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부를 만나다

 

여행을 하며 우리는 새로운 풍경, 낯선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을 만나게 되고 어쩌면 우리 땅에서는 자라지 않는 나무들, 볼 수 없었던 새들, 전설 속에서 나올 법한 기이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인류의 다양한 삶의 방식,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던 종의 역사, 사막과 바다를 가로지르고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눈에 설지만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나는 일이 여행이기에 여행자는 스토리텔러가 될 수밖에 없다.

 

마르코 폴로도 연암 박지원도 한비야도 그 의도야 무엇이었든 이곳의 이야기를 저곳으로, 저곳의 이야기를 이곳으로 전하는 역할을 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서양세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동방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연암의 열하일기산천, 성곽, 배와 수레, 벽돌, 언어, 의복제도등으로부터 장복이의 귀밑사마귀’ ‘여인네들의 몸치장’ ‘장사치들이나 낙척한 선비들의 깊은 속내’ ‘1시간에 70리를 달리는 말의 행렬에 이르기까지 낯선 열하로 우리를 안내한다.

 

현지인들에게도 여행자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다. 여행자의 옷과 카메라, 노트북, 가방 따위는 물론 낯선 냄새와 기운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다. 나는 네팔을 여행하지만 네팔 사람들은 나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는 셈이다. 한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그가 품은 세계를 또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여행자의 몸은 상호 교감이 발생하는 장소다.

 

2009. 대안학교 교사, 여행사 직원, 대학원생, 잡지사 기자 등 다양한 전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을 잇는 공통점은 여행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열띤 토론과 배움, 격려를 거쳐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자들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사회적기업 MAP(Make Amazing Planet)이 문을 열었다. 우리는 여행사업과 교육사업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일과 배움, 노동과 학습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일터를 기웃거리며 일과 노동, 직업의 세계를 어깨너머로 경험하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과 그 과정에 개입하는 책임감을 가져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여행사업부는 공정여행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교육사업부는 여행학교 준비에 착수했다. 그리고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길 위의 학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각각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우리는 여행이 인류가 쌓아온 지혜를 배우고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 훌륭한 학습의 장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 세상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삶을 다르게 사는 법을 발견하고, 누구와 연대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금쯤 알게 되었을 때 생을 살아갈 배포가 생겼다는 이야기에 모두 동의하며 청소년들 역시 길 위에서 자신의 삶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헤아려보았다. 무엇보다 모래바람 이는 사막에 황막한 고원에 지평선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대평원에 그들이 서보았으면 싶었다.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깨우칠 것이기에, 생은 만끽하는 것임을.

 

부모와의 갈등, 또래와의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차별, 불평등, 전쟁, 난민, 핵 문제처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그곳에 교실을 열자. 책상과 칠판, 교무실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토론과 스승, 현지인들과 만나는 그곳이 치열한 배움의 현장일 것이다.

 

다른사람들 속으로 관계를 확장해가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감수성이 깊어지도록, 주변 환경을 스스로 개선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우정과 연대의 여행 지도를 만드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라는 데 우리는 흔쾌히 합의했다. 오래된 미래의 길, 다양성이 공존하는 조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지도를 만드는 일이 여행학교 교사의 주요한 업무가 될 것이었다.

 

여러 갈래의 길 위에서

 

생에는 몇 갈래의 길이 있는지, 저 길의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지, 마음속 켜켜이 쌓여 있는 불안의 핵은 무엇인지 의심과 질문이 있는 곳에서 배움은 시작되고, 내 앞에 이미 고귀한 분투로 우주의 율동을 헤아린 이가 있다면 그가 스승이리라. 살아가는 매순간을 자신들의 공부로 만들었던 이들을 찾아 널리 배우고, 따져 물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환희 분변하여, 독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학교를 준비하며 우리가 품었던 염원이다. 여행을 중심으로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서 어떤 일을 하고 살지 가늠해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갔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적절한 직업을 찾고 그것으로 생활까지 영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리라 즐거운 상상을 해보며.

 

매학기 한 번의 여행을 교육과정의 중추로 삼고 외국어 및 다양한 예술을 결합하며 전체적인 틀이 만들어졌다.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전달하려면 영어와 그들의 언어를 미리 익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여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이야기를 통합하고 해석하고 표현하기 위한 글쓰기와 글 읽기도 스토리텔러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인터뷰, 생애사, 에세이, 자기평가서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해야 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표현하는 훈련도 중점과정으로 넣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화적 언어인 악기, , 노래, 사진, 영상 다루기와 지역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네트워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했다. 특히 이 네트워킹 능력은 앞으로도 누구와 함께 연대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중추를 마련하는 일이기도하다.

 

이렇게 이라는 영어 로드여유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스꼴라를 합쳐 만든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로드스꼴라2009년 문을 열었다.

 

로드스꼴라는 15~22세 청소년들에게 문을 열어놓기로 했다. 열다섯 살 정도면 자기 앞가림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여행학교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게 중론이었고, 막연히 대학에 갔다가 회의가 생긴 청년들에게도 다시 한 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여행학교에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했다. 다양한 연령대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생의 길동무가 된다면 무엇보다 소중한 학교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었다.

 

로드스꼴라 안에서는 이름 대신 서로의 별칭을 부르기로 정했는데, 나이 차가 나는 동기생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기존의 관계를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살아오며 부여된 역할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책임회피, 응석이라는 허방다리에 빠지지 않고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보기 위한 시도였다.

 

교사는 길별로 학생은 떠별로 부르기로 했다. 길별이란 북극성, 북두칠성 따위처럼 어두운 밤에 방향을 알려 주는 별, 혹은 나아갈 방향을 밝혀주는 길잡이별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제 막 길을 떠나는 신생별은 떠별, 부모님은 모별이라 부르기로 했다. 함께 떠난 길별과 떠별이 때로는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 때로는 공동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공동작업자로, 때로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동지로 만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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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 담긴 세상을 찾아

 

처음 탄생한 로드스꼴라가 2년 과정의 전일제 대안학교라면 작년부터 시작한 주말 로드스꼴라는 매주 토요일 일반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홈스쿨러, 대학생, 청년 누구나 조금은 가볍게 참여해 공부와 여행이 만나는 접점을 경험해보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매주 여행을 가는 건 아니다. ‘한 권의 책, 한 번의 여행, 한 편의 글이 만들어내는 인연, 공명, 연대’. 주말 로드스꼴라의 슬로건이다.

 

첫째 주에는 여행할 지역에 대해 공부하며 역사적, 문화적 층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생성된 지역적 DNA가 만들어내는 꿈과 욕망을 들여다본다. 둘째 주에는 텍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팩트와 이야기, 작가와 독자,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경쾌한 줄타기를 한다.

 

그리고 드디어! 셋째 주에는 여행을 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역 사람들이 운영하는 숙소와 밥집을 찾아가며 네트워크를 만든다. 그리고 넷째 주에는 다녀온 여행을 자기의 시각으로 해석해 한 편의 글을 쓰는데, 솔직하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합평회를 거치며 글이 확장되고 성숙해지는 경험을 한다.

 

주말 로드스꼴라의 첫 수업에선 철도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 여행은 매우 많은 탈 것들을 잘 활용하여 부드럽게 선을 잇고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므로, 탈 것에 대한 이해가 깊은 여행자라면 훨씬 다양하고 섬세한 여정을 만들 수 있다. 주말여행학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탈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무래도 기차다.

 

여수에 가려면 호남선을 타야 할까요? 전라선을 타야 할까요?”

 

바로 대답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 차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직접 표를 끊거나 예매를 하는 일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차를 낯설게 볼 수 있다면 인류의 문명사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거대한 산맥과 도도히 흐르는 강을 넘어 저곳에 닿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은 탈것의 진화로 이어졌다. 철도가 처음 인류사에 등장하는 것은 1860년경, 면직물 수출을 위해 맨체스터-리버풀 사이에 철로가 놓이면서다. 철도의 등장은 물류의 교역과 인간의 이동에 획기적인 전환을 불러온다.

 

한반도에 놓인 최초의 철도 경인선 역시 복잡한 지형 속에서 설계된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여 있는 조선을 둘러싸고 일본,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 여러나라들은 철도부설권, 금광채굴권 등 이권을 둘러싼 암투를 벌인다. 스스로 철도를 놓으려는 모색을 안 한 바는 아니지만 자본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고종은 결국 서울-인천간 철도부설권을 미국인 모스에게 넘긴다. 모스가 본국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실패한 틈을 타 일본은 교묘하고 재빠르게 철도부설권을 장악한다. 이후 일본은 가장 효율적으로 조선을 수탈하고 철저하게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을 착공한다. 1945년까지 조선 전역은 촘촘하게 철로로 연결되고 기적을 울리는 증기 기관차에는 일본이 약탈한 쌀과 지하자원은 물론 남부여대 북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 국경을 넘나들던 독립운동가들,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유학생, 여행가들로 북적였다.

 

서울역에서 국제선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즈음이면 떠별들은 엇, 뒤통수를 맞은 표정이다.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여류화가 나혜석이 부산에서 서울 지나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며 세계일주를 했다는 이야기나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갔다는 일화는 떠별들의 머리에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낸다. 서울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기차표를 사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어타고 모스크바 지나 유럽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반도가 고립된 섬이 아니라 대륙과 해양을 잇는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상상과 연결된다. 서울-만주 기차가 운행되고 영국까지 가는 기차표를 서울역에서 살 수 있는 시절이 다시 온다면 어떨까. 내 꿈의 영역은 얼마나 확장될까 떠별들의 얼굴이 설렘으로 일렁인다.

 

두 번째 수업에서 우리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통해 임진왜란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여수로 떠났다. 지역에서 오래 공부하신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텍스트에 은성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내공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비를 긋고자 우연히 들어간 노인정에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다. 무심코 지나친 동구나무가 녹록지 않은 사연을 품고 있고, 황량하고 쓸쓸한 빈터에도 한시절의 눈부신 꿈이 묻혀 있음을 알게 될 즈음이면, 길 위의 모든 것이 스승임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김훈의 소설을 읽고 여수에 다녀온 한 떠별은 이런 글을 썼다.

 

이렇게는 못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이순신은 늘 죽을 자리를 생각했고, 적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를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도 숨어 울어야 했고, 몸을 품은 여자의 죽음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삶의 매순간이 선택이었다. 때로 그의 선택은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생과 사를 매일 반복하며 겪었을 갈등과 책임감을 상상하면 얼마나 벅차고 힘겨웠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고 생각해도 이렇게 살아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칼을 들고, 배 위에 올라가 싸우는 전투는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능력들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럴 때, 칼의 노래에서 만난 이순신이 떠오르기를 바라본다. 힘 있는 신하를 두려워하는 왕 밑에서 백성들을 생각하며 현명하게 행동하는 이순신이 떠오르기를. 12척의 배로 330척을 무찌를 수 있는 담대함과 지혜가 있는 이순신이 떠오르기를. _김지영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비정형적이고 자율적이고 이질적이며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경험은 때로 불안을, 상처를, 고독을 그리하여 마침내 생의 목표를 던져줄 것이니 흔들리고 휘청거려도 좋다. 저 나무, 저 안개, 저 노인, 생을 다한 것들, 일렁이는 빛의 파도가 비로소 스승이 될 것이니 길 위에서 마음껏 나부끼길. 저 창공의 깃발처럼.

 

김현아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원문보기 : http://www.mindle.org/xe/577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