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로드스꼴라
농땡 2019.05.04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즐겨 찾는 떡볶이 집에 장일순 선생님의 <손님>이 액자로 걸려있었다. 떡볶이를 먹다가 고개를 들어 처음 그걸 읽었을 땐, 손님이 왕이다라는 내용이구나 생각했다. 그만큼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보여주려는 건가보다 하고 넘겼다. 일반적으로 왕이라는 표현말고 하느님이라고 칭한 것이 특이하게 다가왔기는 했지만,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원주 여행을 앞서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된 장일순 선생님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알고 나니, 떡볶이 가게의 그 글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번 기회로 장일순 선생님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전부터 한살림은 알고 있었다. 다만 친환경적인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살림이란, 직접적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직거래 운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온 우주의 생명에 대한 관심에 뜻을 두고 있다. 먼저 가게로서 한살림을 알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사실 원래는 장일순과 그 동지들의 뜻이 먼저 서고 이후에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한살림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들이 품은 의미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파도처럼 요동치는 현대사 속에서, 자신의 물결을 따라 뜻을 펼치던 장일순 선생님은 70년대 말 그동안의 노동•농민 운동을 공생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다. 생명 운동이라니 조금은 생소했다. 어쩌면 많이.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뜻을 어떻게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건지 자연스레 물음이 따라온다. 장일순 선생님의 말과 글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명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일상을 살아갈 것인지, 내가 생명 그 자체이며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곱씹게 되었다.

 

  하늘과 땅은 나와 한 뿌리요, 세상 만물은 나와 한 몸이나 다를 바 없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장일순 선생님은 그 지혜를 꿰뚫어 이해하고 다시 한 번 그 지혜가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주었다.

 

“자연과 인간, 또 인간과 인간이 일체의 하나 되는 속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일체의 조건이 나를 있게끔 해준 것이지 내가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따지고 보면 ‘내’가 ‘내가 아닌’거지. 그것을 알았을 적에 생명의 전체적인 함께하심이 어디에 있는 줄 알 것이에요.”  - 내가 아닌 나 중에서

 

“각자유심이라 

모두가 날 알아달라고 외치며

자기 자식도 부모의 말을 안듣는 세상이다.

아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내가 없으면 대상이 없고 그래서 하나가 된다.”

 

  내가 곧 자연이고 생명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내’가 없어야 한다니. 처음 읽었을 땐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무슨 뜻인지 곱씹고 곱씹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우리들은 ‘나로서’ 사는 것이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원하는 성공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행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생각해보니, 내가 찾았던 나와 장일순 선생님의 무자성은 다른 맥락, 그리고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경쟁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다양한 개성이 지워진 채로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경로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탈해서 나 자신을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비로소 나 자신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그 뒤로는 그저 해피엔딩일까? 더 나아가서 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일 것이다. 내가 없다는 것은, 내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 만물에 내가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물이 아니라, 만물이 나인 것이다. 생명을 담기에는 세상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간은 작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이 곧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부처나 예수가 그러했듯이,  사사로운 내가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위하는 겸허함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이런 뜻으로 해석하는 것을 처음 알아서 놀라기도 했다.

 

  나름대로 장일순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수록, 생명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숭고해서, 사사로운 일에도 몸과 마음이 치이는 내가 민망했다.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듯 느껴지는 생명 운동과 사상을 사회 전반에 녹여내려고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며, 실천한 것이 정말 대단하다. 한 편으로는 선생님의 생각을 곱씹으며 나의 일상에 감사하게 되었다. 나와 나의 배를 채워주는 밥의 소중함과 그 안에 우주 만물이 들어있는 거룩함. 어머니이자 우두머리인 존재의 위대함과 끝없음. 햇살과 달빛이 나를 비추고,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나를 스쳐갈 때의 충만함. 이 모든 감사한 일과 나의 경계가 흐려지고 하나가 될 때 느껴지는 힘. 그래서 내가 아니어야, 없어야 한다고 말하신 부분이 가장 와닿았고 참 좋았다.

 

  우리집에는 일반적으로 티비가 있을 자리의 한쪽 벽면이 모두 책장이다. 대부분이 아빠가 읽고 수집한 책들이다. 책장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던데, 나는 별로 유심히 책장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이번주에 읽을 책을 확인하고 나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는데, 아빠와 이야기하다가 그제서야 우리집 책장에 그 책이 이미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는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에는 아빠가 애독서에 붙이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의 페이지 위쪽 끄트머리가 접혀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상 깊은 페이지의 아래쪽을 접었다. 종종 위 아래가 모두 접힌 페이지를 보면, 아빠에게도 책 제목과 같은 감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