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로드스꼴라
제목
농땡
2019.05.04
농땡 2019.05.04

2019.4.27.

주말로드스꼴라 5기 합평회

4, 담양

키가 다 자란 대나무는 속을 단단히 한대.

농땡(고제경)

!, 양파!” 하고 수박이가 눈을 찡긋거리며 속삭였다. 담양에서의 둘째 날 저녁을 먹는 도중이었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푸짐하게 차려진 한정식 반찬들 중에서 계란찜을 먹으며 감탄하자 수박이가 은근슬쩍 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리고는 아무리 그래도 역시 고기가 제일 맛있다며 말을 아끼지 않았다. 계란을 포함하여 몇 가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양파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나보다. 그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젓가락을 내딛지 못했다. 배고픔이 앞서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줄만 알았지, 음식을 먹지 못하는 또는 먹지 않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떨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 어둠을 뚫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수박이, 오렌지, 양파, 라임, 이브 그리고 아띠와 함께 담양으로 첫 팀별 여행을 떠났다. 여행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가장 의욕이 넘치던 수박이가 팀장을 맡았다. 그리고 오렌지가 기록과 함께 여행 동안 우리가 정한 플라스틱 규칙을 바탕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관리하는 플라스틱 매니저를 맡았다. 그리고 양파와 이브가 맛잡이를, 라임이는 회계를 맡고 나는 길잡이를 담당했다. 나이도 많고 답사도 다녀본 나는 왠지 조금 거만해져서는, 나머지 떠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거나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습게도, 오히려 내가 23일 동안 참 많이 배웠다.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들고, 가방에 과자를 잔뜩 챙겨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지만, 동시에 가슴에 하늘과 산과 초원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우리가 정한 규칙을 열심히 실천하고 맡은 역할을 꿋꿋이 해냈다.

 

과일과 채소가 많은 우리 과채팀은 첫날, 메타세콰이어길로 걸어가면서 만난 담양읍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는 민들레 밭에 사로잡혔다. 오층석탑을 등지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서 있으면, 절묘한 풍경화가 펼쳐진다. 발 아래로 민들레 홀씨들이 잔뜩 모여있고, 고개를 들면 오른쪽엔 산이 걸쳐져있고 왼쪽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줄지어있다. 그렇게 우연히 발길을 들인 그 곳에서 우리는 마치 홀씨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민들레 밖에 모르는 그 풀밭에서, 오렌지는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그 곳의 매력에 빠져 정작 메타세콰이어길에 도착해서는, 들어가지 않고 시간 상 바로 버스를 타고 죽녹원으로 이동했다. 죽녹원에서는 문화해설사님께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창한 대나무 숲 속에서 대나무들을 보고, 듣고 느꼈다. 대나무는 약 열흘 동안 키가 모두 자라고, 이후에는 속껍질이 단단해지는 것이 마치 사람이 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 또한 단단해지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았는데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우리가 머무른 창평 슬로시티를 자세히 둘러보고, 죽세공품과 쌀엿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사각사각, 쫀득쫀득 재미있었다. 그리고 활발했던 죽물시장의 모습과 죽공품의 쓸모는 뒤로 한 채, 시장과 일상을 장악한 플라스틱 때문에 좁아진 대나무 제품의 입지를 실감해서 씁쓸하기도 했다.

시간이 유독 빨리 흘렀던 것 같은 담양 여행을 소쇄원으로 마무리하였다. 소쇄원에 가면 정자에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던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이 깊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소쇄원에 대한 기대가 컸다. 대나무숲 입구를 지나 오리 한쌍에게 인사를 건네고 마주한 소쇄원의 첫 인상은 생각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관광객이 조금 많아서 시끌벅적했고, 한눈에 구조가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띠의 제안대로 침묵을 지키며 소쇄원을 둘러보았는데, 그제서야 소쇄원의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시냇물 같은 작은 폭포 소리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둔 채, 마치 그 풍경이 정자들을 안아주는 모양새였다. 광풍각의 마루에 앉아 사방을 바라보니 교수님의 말씀이 조금 실감이 났다. 자연을 바라보며 정치의 염증을 달래고, 이상을 그렸던 선비들의 시선이 이런걸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정치를 하며 쉽게 변해버리는 신념과 사람들 속에서 닳아버린 선비들은 자연 속에 파묻혀 불변하는 푸르름을 동경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을 벗삼아 위로 삼아 살아가며, 후학들을 양성하여 그들은 자연과 같길 가르쳤을 것이다. 그렇게 책에서 머리를 지끈거리며 읽었던 많은 선비들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았다. 우리는 자연을 음미하며 광풍각에서 옛날 선비들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생각을 나누었다.

 

선비들은 성리학적 이상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도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조정에서 정치적 신념을 펼치다 염증을 느낀 선비들은 낙향하여 후대를 위한 글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무기력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끝까지 동지들과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날 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부재의 기억>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5주기가 되었지만,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대로 내 생각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전반의 부조리함과 국가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묻어두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무기력함과 거대한 힘과 구조에 비해 초라한 개인은 늘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어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해주셨다. 참사 이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쟁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있고,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두려움에 주저앉지 말고 서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가 나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옛날, 소쇄원에서, 그리고 다른 여러 시공간에서 그렇게 발돋움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

 

한편으로는 소쇄원에는 부엌이 없다는 어딘의 말을 되새겼다. 부엌이 없다는 것은 당시 여자들이 존재하던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여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예전에 노비법을 없애고자할 때, 노비는 양반의 수족과도 같기 때문에 극구 반대한다는 상소문이 있었다는 내용을 봤다. 말그대로 남자 양반, 선비가 그들의 삶을 영위하도록 여자와 노비는 그들의 손과 발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역사에서 희생된 여자와 노비들의 삶을 찾아보기가 참 어렵다, 아띠는 글을 통해 지금까지 배제되고 삭제되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살려주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렌지는 왜, 언제부터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고정된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여 질문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하고, 지금까지 닿지 않은 곳에 시선을 두어야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과 목소리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와 우리의 목소리 모두. 지난 밤에 만약 선생님이 되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모르겠다고 막연한 두려움과 답답함을 호소했었다. 소쇄원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짐하고 나니, 역사 선생님이 되어 어떤 목소리를 학생들에게 건넬 것인지 조금은 분명해졌다. 여전히 나는 공부와 방청소가 어려운 게으른 휴학생이지만, 아주 조금씩 그리고 분명하게 단단해지며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키가 다 자란 대나무다 속껍질을 단단히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