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로드스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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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
2019.05.28
강냉 2019.05.28

2019.5.17.~5.19.

주말로드스꼴라 5기 합평회

5, 원주

 

숨바꼭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 찾기

강냉(강예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지? 지금부터 찾는다!” 벌써 주말로드스꼴라에서 함께 하는 세번째 여행지로 원주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원주에서 만났던 사람들, 협동조합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술래가 되어 장소 곳곳에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순간들에 숨어있는 그것들을 쫓았다.

박금이 그리고 박경리

내가 제일 먼저 찾았던 건 박경리 작가의 삶이다.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해설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박경리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주가 박경리 작가의 고향은 아니지만, 자식과 손자를 위해 터를 잡은 후 이곳에서 18년간 살면서 소설 토지의 마무리를 지으셨다고 한다. 작가 박경리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자면, 그녀는 원주에 와서도 토지 집필을 위해 외부와 자신을 차단해 거의 집에만 머무르셨다고 한다. 그리고 글 작업을 할 때는 타자기가 나온 이후에도 만년필과 원고지를 계속해서 사용하셨다. 직접 작가의 손 글씨를 보니 작가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설레기도 했다. 토지에는 이름과 성격을 가진 인물만 대략 568명이고, 70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기록 없이 그려내셨다고 한다. 나는 단편 소설 하나를 읽을 때도 가끔은 헷갈려 적으면서 읽는데 작가의 머릿속에 마치 몇천 평의 밭을 일궈두고 기억을 하나하나 심어두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5월 필독서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의 박경리 부분을 읽고 남긴 리뷰에서 작가가 평사리를 먼발치에서 한 번 본 것을 바탕으로 묘사를 하는 것에 대한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었다. 알고 보니 그 뒤에는 박경리 작가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읽은 책과 자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나는 박경리의 여행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 속에서 작가는 장소로서의 목적지가 정해진 여행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꿈속에서도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여행을 했고, 그것을 통해 본 것들은 다양하고 풍성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박경리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사리에 오랫동안 머물며 시간을 보내다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박경리에서 시선을 조금 옆으로 옮긴 곳에는 박금이가 있다. ‘박경리 작가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이가 드신 후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 문학공원에서 그녀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던 얼굴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변 동료의 말로 꾸미지는 않았지만, 코트 하나만 입어도 멋이 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렇게 젊은 시절 웃고 있는 사진 뒤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험난하고 힘든 삶을 보냈다. 전쟁을 겪고,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에 멍이 들기도 했다. 나는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그 힘든 시절을 지내온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박금이의 처음 직업이 작가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꽤 흥미로웠다. 우체국에서 일했다가, 선생님과 기자를 했다가 잡화점에서도 일하다가 그 후에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라는 걸 부쩍 느끼고 있는데 그녀도 여러 직업에 발을 담그며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묻고 싶었다. 그녀는 작가가 되어서도 그것에만 시간을 내줬던 것이 아니라 조각도 하고, 쉴 때는 바늘과 실을 손에서 놓으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또한, 집 앞 밭에서 농사도 하셨다. 그리고 그녀는 생명 사상의 본거지인 원주에서 살며 이에 이바지하기도 했는데 사람은 자연이라는 원금에서 나온 이자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이자론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집 안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밖으로 내놓지 않고, 농사를 지을 때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 등 자신이 주장하던 생명 사상을 몸소 실천하면서 사셨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을 이자론에 빗대면 원금과 이자 둘 다 대부분 사람이 차지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 반성이 되었다.

 

 

삼국시대에서 21세기까지

우리 팀은 둘째 날에 갈거리협동조합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김선기 사무국장님을 뵙고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갈거리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전 협동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원주에 오기 전에 협동조합 관련 수업도 들었지만, 여전히 협동조합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김선기 사무국장님의 이야기들은 정말 유익했고 재밌었다. 협동조합의 시작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시장이 생겨나기 이전에 협동조합이 먼저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나는 집단이 생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생겨난 게 시장 혹은 국가가 먼저였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게 협동조합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그 시절부터 협동조합에서는 사람 모두를 동등한 자격으로 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자 했다. 이것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때는 조선 중기쯤이다. 조선 중기에 존재했던 향약, 두레, 계 중 가 오늘날 협동조합과 겹쳐진다. 내가 살아보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 협동조합의 옛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가 어떻게 존재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으로는 내가 그 시대에 들어가 잠깐 살다 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조선 시대에 탐라국(지금의 제주도에 있던 옛 나라)에 하자 마을에 살던 강냉이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냉이 살고 있던 마을에서는 매달 집별로 혼인 혹은 장례 등의 경조사가 열렸다. 마을에 살던 강냉이의 가족과 동네 이웃들은 그때마다 필요한 많은 양의 상, 수저들을 구하기 위해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힘이 들었다. 또 그 많은 양의 물건을 구하지 못한 날에는 밥을 먹고 있는 손님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다른 손님이 기다려야 하는 난처한 상황도 생겼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강냉의 옆집에 살던 자리타는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매번 경조사가 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고민하니 마을에서 여분의 상, 수저들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사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게 자리타가 의견을 내니 또 다른 이웃 주민 오쭈는 좋습니다. 그러면 쓸 때마다 사용료를 내고, 모인 돈으로는 나중에 물건들이 낡았을 때 바꾸는 데 쓰도록 하는 건 어떤가요?”라고 의견을 내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여 모두 한 번씩 의견을 덧붙이니 마침내 하자 마을에 유물계라는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내가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를 이해했던 방식이고, 그에 연장선으로 오늘날 존재하는 협동조합을 이해했던 것 같다. 계에서 모인 돈은 특정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쓰였다. 이것이 현재의 이용자 협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이외에도 농사짓는 기구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농구계, 로드스꼴라 같이 함께 여행하는 여행계인 유산계도 존재했다. 그러나 가 가지고 있던 모습들은 6.25 전쟁 이후에는 마을 단위가 사라지게 되면서 이와 같은 모습이 많이 깨지게 됐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란 무엇이냐 하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수단)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목적)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주체)의 자율적 결사체(본질)이다. 협동조합을 볼 때는 시설, 수익 등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 봐서는 그 협동조합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수익이 많이 나기 위해서는 순이익을 극대화되어야 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과정에서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로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느낀 건 협동조합 내 사업이 수단으로서만 쓰여야 하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부턴 협동조합이 아니라 그냥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사업체에 불과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협동조합이랑은 조금 다른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표현에는 결사, 상호부조, 초대와 환대가 포함되는데, 이는 협동조합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뻗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방문한 갈거리사회적협동조합도 이에 포함된다. 갈거리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신용이 안 좋은 이들의 돈을 관리해주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상담과 교육을 통해 손을 내민다. 갈거리사회적협동조합의 몇 가지 사례를 들으며 새롭게 알게 된 점 중에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절대 빈곤의 늪으로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조금이라도 모으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 나라에서 조금씩 받던 지원이 끊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당장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희망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국가 지원금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 지원금액도 내 생각보다 적었고, 가난·사회적 약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도록 조성하는 실태라는 것에서 충격을 받고 제도에 실망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미래를 꿈꾸고 싶어지게 하여 주는 것은 바로 옆에서 돈을 모을 수 있도록 관리를 하며 도와주고, 맞닥뜨리는 고민·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사무국장님은 이처럼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돕는 마음은 단순 연민이 아니라 같은 제도 속에 속해있는 사람으로서 가 또는 가 어려움에 겪을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관계에서는 누가 수여자며 누군가는 수혜자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보통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랬던 내 사고에 새로운 것이 찾아와 문을 두들겼다. 잘 생각해보면 도움을 주고받는 행동 모두가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사무국장님께 듣는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이해하기에도 어렵지 않아 듣는 내내 내 눈이 초롱초롱 빛났던 것 같다.

 

잠들기 전 한 시간 반

둘째 날 밤, 닫기 모임을 하기 전 모두가 모여 다음날 변동이 있을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까지 내가 집단 속에서 했던 협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수결이 아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견을 몇 번이고 묻는다. 한 차례씩 회전이 될 때마다 가지고 있던 의견이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설득이 되어 바뀌기도 하고, 처음 의견 그대로 가져가는 이들도 있었다. 또 협의하는 자리에서 어떤 선택이든 상관없다라는 의견은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이 자리에서 그것 또한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면서 의견이 하나로 모여 가는 걸 보는 건 굉장히 흥미로웠다. 물론 완벽하게 모두가 원하는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소리를 내었고 그것이 곧 힘이 되어 협의가 이뤄진 결과에 어느 정도 힘이 생겨있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와서 피곤하고 얼른 씻고 자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것을 잠깐 미뤄도 될 만큼 필요한 배움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 상황들이 많이 생길 텐데 그 과정을 어떻게 밟아나갈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찾기에 앞서서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방향에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길을 트는 것 모두 어렵지만 나름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박경리 작가, 무위당 장일순, 협동조합 실무자님과 같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지난 몇 년간 아마 나는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다가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을 느끼는 것까지 포기해버렸던 것 같다. 그래도 2019년이 되면서 다시 내 곁에 있는 것에 소중함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그 자체가 또 나의 행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