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로드스꼴라
제목
강냉
2019.05.31
강냉 2019.05.31

6월 필독서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나는 이 책의 표지가 내가 읽은 책 표지를 보듯 익숙했다. 그 이유는 내가 가는 서점마다 혹은 인터넷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고, 표지에 가운데 하정우가 딱 자리 잡고 있어 그런지 머릿속에 쉽게 오래 남아있던 것 같다. 서점에서 눈에 띄는 곳에 놓 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하정우 특유의 말재간과 꾸밈없는 솔직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 그러다가도 삶에 보탬이 될 만한 말과 생각들이 있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읽으면서도 책을 읽는 느낌보다는 한 편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난 느낌이 들었다.   

 먼저 이 책의 제목처럼 이야기는 그가 걷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의 걷기 얘기를 들었을 때 그는 내가 일 년에 두세 번 할까 말까 한 그 정도의 걷기를 하고 있었다. 뭐 걷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약속에 걸어가기 위해 일찍 나와 몇 시간 걸어가는 건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제목에서 걷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하여도 이만큼의 시간과 거리를 쌓아두며 걷고 있는 줄 상상 못 했다. 그에게 걷기라는 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닌 것 같기도 했다. 그 이유는 그가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치고, 생각이 많아질 때 그가 선택한 방법 또한 걷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 때 그것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라며 선택하는 방법들은 대부분 실내에서 이루어지며 사실은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면서 그렇게 조금씩 해결책을 찾아갔다. 반면 하정우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지면 밖으로 나가 근처 산이나 동네를 걸으러 가는 사람이 몇 있다. 그런 걸 보면 그 방법이 잠깐이라도 머리를 비우는 데 꽤 효과 있는 것이냐는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고민을 풀어가는 방법에도 만족하지만 가끔은 풀기 이전에 생각하기도 싫은 생각들이 있을 땐 한 번 걸어보고도 싶었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하정우가 출근 시간 전 강남을 걸으며 찍은 사진을 책 페이지 한 면에 실었는데, 그걸 보고 나니 나도 호기심이 생겨서 사람들이 많이 깨기 전 동네 산책을 한 번 꼭 해볼 거다.

그리고 나는 마치 이어질 수밖에 없는 꽃과 벌같이 걷는 것을 인생과 연결해 말한 부분들이 인상 깊었다. 먼저 처음부터 누구나 10만 보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처음부터 다 잘할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다고 그러나 조금씩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을 읽으니 내가 12살 때 아빠와 있었던 일화가 하나 생각났다. 초등학교에서 열렸던 가족 야영에서 아빠 허벅지에 올라가 타이타닉 자세를 취하고 오래 버티는 종목이 있었다. 그때 아빠는 우리 끝까지 버텨보자가 아니라 “1분만 몇 분만 더 해볼까?”라고 해서 거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았던 게 기억난다. 만약 그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남는 걸 목표로 했다면 아마 더 일찍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일화를 떠올릴 때마다 들곤 한다. 그리고 하정우에게 10만 보의 경험이 내게는 마치 작년에 흘러갔던 방황을 하던 힘든 시간 뒤 내게 남은 경험들처럼 느껴졌다. 그가 10만 보에 쉽사리 당장 다시 할 수 있겠다고 대답하지 못하듯 나 또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하면 이라고 답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이 내 삶의 주도권을 내 손에 쥐여줬던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느낌이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앞으로 내게 다가올 또 다른 시련에서는 나에 대해 믿음을 좀 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재밌었던 건 하정우의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의 요리 얘기를 읽다 보면 블로그에서 요리 레시피를 보고 난 후처럼 ?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결국, 나는 장을 보면서 몇 가지 식재료들을 사서 그가 얘기해준 또띠아 한 장으로 만드는 내 멋대로 씬피자를 해 먹었다. 또띠아를 깔고 소스를 살살 바른 다음에 양파, 양송이버섯, 치즈를 올려서 구웠다. 간단하고도 쉽지만 내가 만들었다는 뿌듯함에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함께 걷기를 하는 팀원들과 걷기 전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잘 보고 왔냐는 것을 오늘 재판은 순조로웠어?”라고 말하는 게 재밌었다. 소화가 잘 되었냐는 질문 하나로 웃음이 나고,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예술가 하정우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된 점들이 생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하정우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감독으로서 어떤 작품을 냈는지도 처음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는 그가 감독으로 작품을 연출했지만 흥행하지 못했다정도로만 생각해왔었다. 근데 책에서 그가 풀어낸 속 이야기는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서 책을 읽기 이전에 했던 생각에도 변화가 왔다. 그가 <롤러코스터>,<허삼관>을 연출하는 데 기울인 노력에 나타난 결과가 그때는 무엇보다 큰 상실감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하정우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그때를 돌아보면서 그 경험들이 그의 배우 생활,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감독으로 겨우 2번째 작품인데 아직 갈 길이 많아~라고 생각하는 것도 멋졌다. 보통 흥행에 실패한 작품을 돌아보면 아픈 손가락으로만 생각해 외면할 수도 있기 마련인데 그걸 돌아보고, 그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모습도 멋졌다.

 이번 여행 때 지리산을 23일 동안 걸으면서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들 때도 많을 것 같지만 내가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무엇을 마음에 담고 올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