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기 떠별
제목
온온온
2018.05.17
온온온 2018.05.17

이제 진짜 다시 승안동에 올 일 없을까

 

오랜만에 온 승안동 마을은 여전히 조용하고 봄이 가득했다. 언뜻 보면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마을을 돌다보면 분명 달라진 것들이 눈에 띄었다. 떠나기 전까지 공사 중이었던 집은 어느새 하얀 벽에 때가 묻은 집이 되었고 마을 입구에 있던 집에 살던 강아지는 더 이상 낑낑이 아닌 컹컹소리 내며 짖어댔다. 우리가 심었던 고구마 밭의 고구마들 역시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알 길 조차 없고 그 자리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마을을 거닐다보니 마치 일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을 지도를 그리겠다고 수도 없이 돌아다녔던 마을 골목길들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일 년 전의 온도, 소리, 식물들의 높낮이마저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는 다시 원주 승안동에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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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월 승안동 마을을 떠날 때였다.

이제 다시 올 일 없겠지?’

적당히 맑은 날에 배낭을 메고 승안동을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냥 저런 생각이 들었다. 로드스꼴라에서의 여행이 아니라면 전혀 인연이 닿지 않을 법한 승안동 마을에 내가 과연 다시 올 일이 있을까?

그랬던 내가 다시 승안동 마을에의 길을 걷고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정확히 일 년 후 나는 다시 원주 승안동에 있었다. 나는 정말 알 수 없었다. ‘왜 또 굳이?’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갔던 곳을 왜 또 가지? 또 똑같은 것만 배울텐데 도대체 왜?

그런 약간의 억울함에 이어 걱정도 한바가지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있으면 기가 다 빨리고 시끄러운 것 때문에 나는 8기 열한 명이 참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는 사실 9기와 함께하는 서른 한 명과 함께하는 여행이 걱정 됐다. 내 기가 빨리는 것은 다음 문제였다. 서른 한 명이 이동하는 것은 참 시끌시끌하고도 북적거린다. 혹여나 우리의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많아서 좋은 점 또한 있기 마련이다. 열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서른 한 가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열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던 나는 서른 한 명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즐거워졌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똑같은 공부를 하면서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사람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작업도 많아졌다. 내가 속한 그림팀은 아홉 명이나 되니 작업을 하면서 의견들도 다양하게 나눴다. 사람이 많다고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가 아니라 각 각의 장단점이 있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9기와 함께 여행을 가지 않고 8기 열 한 명이서 여행 후 에세이를 썼다면 사람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나는 사람이 많은게 아직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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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선생님, 한 살림 이희영 선생님, 언니네 텃밭 이숙자, 한영미 선생님께 강의를 듣고 내가 왜 다시 원주에 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여행의 주제로 잡은 식량주권과 협동운동에 대해 배우려면 국내에서는 원주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협동조합이 시작된 곳도 원주이고, 그 한 살림이라는 협동조합이 원주에서 시작되면서 함께했던 장일순, 지학순 주교가 지냈던 곳 또한 원주인 것이었다.

 

협동조합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 포인트가 흥미로웠다. 어떠한 권력에 부당함을 느끼고 협동조합이라는 것들이 탄생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 소비자들이 뭔가 부당함을 느낀 후에야 협동조합이 탄생하고 그런 협동조합으로 인해서 보다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게 된다. 그런 부당함이 없었다면 굳이 협동조합이라는 것들을 만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부당함들에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부당함 또한 어떤 사회가 돌아가는데에 있어 자연스러운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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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바쁜 45일의 일정을 마치고 원주와 승안동 마을을 다시 떠나는 날, 작년과 적당히 맑은 날이었다. 작년과 올 해 봄 나는 승안동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단 두 번 만으로 내가 봄에 승안동 마을에 오는게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봄의 원주와 승안동 마을이 아니라 겨울의 원주와 승안동 마을이 궁금해졌다. 승안동 마을에서 나오는 91번 버스를 타면서 또 이제는 진짜 다시 올 일 없겠지싶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밑바닥에는 겨울의 원주와 승안동 마을이 궁금해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다시 올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깔아 놓았다. 올해 겨울이 될지 내년의 겨울이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간은 내 의지로 찾아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삶은 살지는 모르는 것이다. 혹시 모른다. 내가 승안동 마을에서 살게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