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기 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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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쭈!
2018.06.13
5쭈! 2018.06.13

다시,원주

오쭈

추억을 꺼내다

201711, 책꽂이에 꽂혀있는 두꺼운 파일 중 눈에 띈 검은 색 파일 하나를 꺼냈다. 여행에서 하나씩 모아놨던 판플렛들이있다. 제일 첫 장에 원주에서 가져온 박경리 문학공원 안내 책자, 원주 맛집 지도, 간현의 레일파크 안내서도 있었다. 벌써 원주 여행을 하고 온지 6개월이 흘렀었다.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밥을 하다가 양파를 밟아서 미끄러질 뻔한 일, 닫기 모임 때 안 졸려고 펜을 붙잡고 뭐라고 쓰던 일 등을 말이다. 그런데 파일이 너무 무거워서 버릴까 하고 고민을 했다. 더 이상 원주를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꺼내려던 순간 갑자기 뇌에서 버리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잖아하고 말을 걸었다. 분명히 앞으로 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버리기 찝찝하지?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손을 빼서 다시 파일을 책꽂이에 꽂아 놨다. 원주는 어차피 안 갈 거지만, 그냥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내버려두려고 했다. 그런데 내 뇌가 미래라도 예언했던 것인가? 20184 22, 나는 운명처럼 그 파일에 지도들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낯선 익숙함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가방을 메고 원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 맞다, 나 원주에 왔지. 버스를 타고 오느라 찌뿌둥해진 몸을 피며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모든 것이 일 년 전 그대로였다. 심지어 날씨도 1년 전과 같이 비가 왔다. 뭐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길 건너 있는 동전 노래방이 네 곡 천원에서 세곡 천원으로 가격을 올린 것 정도? 여전히 승안동으로 들어가는 91번 버스는 늦게 왔고, 원주 시장의 돈까스와 율무차는 최고였고, 승안동 마을은 평화로웠다. 이 곳이 낯설었을 9기에게 조금은 아는 체를 하고, 곳곳에 추억이 있는 8기들과는 들뜬 채로 담소를 나누며 45일 동안 길을 걸었다. 기분이 간질간질 낯설었다.

김영주 선생님께 강의를 들으러 가던 날, 내가 속한 연극 팀은 근처 카페에 잠깐 들어가 있기로 했다. 강의를 들을 무위당 기념관은 원주 시장에 있어서 자연스레 발걸음 시장으로 향했다. 시각은 아침 9, 문을 연 카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원주 시장에서 카페 하나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쉽게 찾지 못했다. 체인점은 가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카페를 찾는 것은 더 어려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에 날씨가 꽤 쌀쌀해서 잔뜩 움츠려 들었다. 우리는 카페가 아닌 일찍부터 문을 연 다방을 한 곳 찾았다. ‘금다방이름이 왠지 친숙했다. 음료의 가격 대부분이 2000~3000원이었다. 따뜻한 유자차를 하나 시키고 김영주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준비를 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몸도 따뜻해지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 금다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연극 팀은 그 날 팀 명을 정했다. ‘연다방으로. 원주 시장이라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 또한 내 착각이었다. 같은 여행지에 다시 오더라도 새로 보이는 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금다방은 나에게 익숙함에서 낯선 모습을 찾아주었다.

연다방이 박경리를 기억하는 법

이번 팀 별 여행에서 받은 미션의 키워드는 박경리였고, 내가 속한 연극 팀은 박경리 작가를 연극으로 표현해야 했다. 대하소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야 하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말로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 아직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다. 팀 별 여행은 수요일이었고, 나는 월요일, 화요일 내내 걱정만 했다. 나와 달리 태평해 보이는 나머지 팀원들이 부러웠다.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수요일이 와버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갔다. 막상 공원에 도착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넓은 공원의 나무들과 풀들을 봐서 그런가, 일단 걱정은 잊어뒀다. 돌담 너머 살짝 보이는 박경리 작가의 옛집도 정겨웠다. 햇빛이 데워놓은 따뜻한 돌에 앉아 여유로운 20분을 보낸 후, 박경리 작가를 전시해 놓은 문학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영 선생님께서 쭉 해설을 해주셨다. 확실히 한 번 쭉 들으니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일단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녀에게 문학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녀의 생명사상, 그리고 토지. 세 키워드가 딱 박혔다. 딱 그 정도였고 점심을 먹으러 문학공원을 빠져 나오니 다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 키워드들을 연극으로 보여줄 방법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큰일 났다.’ 속으로 생각하며 비빔 막국수를 먹으니 체할 것 같았다. 계속 걱정만 하고 여행을 즐기지 못하면 내 손해니 일단 잊고 신나게 놀았다.

간현관광지로 이동해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소금산을 올랐다. 작년에 길을 헤매어 오르지 못했었는데, 1년 후에 다시 원주에 와 산을 오르니 기분이 이상했다. 울렁울렁거리는데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새 생긴 공중 400m에 있는 출렁다리를 건너며 일단 그 순간을 즐겼다. 다리가 출렁거릴 때마다 움찔거리는 친구들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진 찍고 영상도 찍었다. 이후에 다행히 카페에 들어가서 이 연극을 회의할 시간이 생겼다. 망고 스무디를 쪽쪽 빨면서 각자가 생각한 키워드, 아이디어들을 쭉 말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단편으로 짧게 세 장면을 하기로 했고 순식간에 배역도 정해졌다. 나는 박경리 작가의 친구와 거위를 맡았다. 대사도 짜서 무사히 공연을 올렸다. 손발이 맞는 연다방의 팀워크를 보니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가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너무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계속 고민만 하고 되는 일이 없었지. 이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 쉽게 풀릴 일이었는데. 연다방에 대한 의존도와 신뢰가 한 층 깊어졌다. 여행에서 제일 크게 얻어간 부분이다.

다시 안녕

승안동녹색농촌체험관에서 짐을 싸고 청소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45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어르신들께 마음속으로 한 분 한 분 인사 드렸다. 하늘은 정말 파랬고, 마음은 뒤숭숭했다. 직접 만나 뵙고 싶은 마음, 좀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 하지만 집에 가서 몸을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막 겹쳐져서 복잡했다. 내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드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91번 버스를 탄 후 마지막으로 승안동을 돌아봤다. 너무 고맙고 재미있는 그곳을 보며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안녕. 설마 내년에 다시 오겠어?’






경주 여행 에세이


2018 5 30


몰라봐서 미안


오쭈


 


나는 경주가 싫다. 엄마가 일 때문에 일년간 헤어지게 된 그 해 마지막 여행지였다. 여행에 가서도 다툼이 있었다. 그 마지막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한 채 부산으로 떠나게 된 엄마와 새벽에 부둥켜 안고 울던 추운 겨울 날이 떠오른다. 경주에 가서 한 일은 많고 보고 온 것도 많은데 그런 건 기억나지도 않고 예고 없이 심장 한구석이 아려온다. 나의 첫 경주 여행은 나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와는 지금은 행복하게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나의 경주 추억은 바뀔 수 있을까? 마음이 시려왔다.


우리들의 경주


여행 첫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공기는 살짝 시원했고 해는 쨍쨍했다. 한옥을 리모델링 하여 만든 우리 여행의 숙소, 게스트하우스 도란도란은 예뻤다. 작은 마당엔 고양이 세 마리가 막 돌아다니는데 보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방의 이름은 훈민정음 자음의 순서로 꽃의 이름을 활용했다.방의 내부는 넓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이 너무 예뻤다. 트렌디한 한옥이라고 설명하면 딱 알맞을 것 같다. 숙소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정말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은 곳에 첨성대와 대릉원 같은 유적지들이 있는데 안 가볼 없으니까.


팀별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경주를 우리의 두 발로, 몸으로 느낄 기회도 늘어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일정을 짰다. 당연히 유명한 유적지도, 가장 유명한 절 불국사와 석굴암도 방문하겠다며 열정적인 하루를 보낼 생각을 했다. 가장 특별한 점은 이 유명한 곳들의 해설을 직접 우리들이 맡아서 준비해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허기 싫었다. 조사를 해오는 것도 일이니까. 또 항상 해설을 듣는 입장으로만 있다가 설명을 해 주는 입장이 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나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습득하면 어떡하지? 열심히 준비했는데 모두 거짓말이면 어떡해? 이런 긴장감 덕분에 더 책임감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 나는 석굴암과 경주 석빙고를 맡았다. 신라 사람들의 지혜, 기술, 불교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는 석굴암과 귀하디 귀한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 모두놀라웠다. 사실 신라 때 설계 된 모든 건축물, 그 건축물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할 일이 있었고 멋지게 해냈다. 내가 조사했던 석빙고를 예로 들 수 있다. 바닥은 살짝 기울여져 물이 고이는 걸 방지하고, 굴뚝 세 개를 뚫어 환기를 시키며 그 구멍 위엔 조각한 돌로 덮어 이슬을 막아준다. 겨울엔 잔뜩 있지만 여름엔 구하기도 힘든 걸 사람들은 왜 어렵게 보관을 했을까? 이 얼음은 집안에 누군가 죽었을 때 시신이 빨리 부패되지 않도록 나눠주거나,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상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얘기들을 빨리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막상 경주 석빙고 앞에 앉아 설명을 하려니 말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설명이 써져 있는 종이에만 의지해 읽어나가게 되었다. 종이엔 내가 이해하지 못한 어려운 말들이 잔뜩 있으니 쉽게 설명해줄 수가 있나. 홍예, 장대석 처음 보는 말들이었다. 조금만 덜 긴장했다면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는데. 정신 없는 와중에 해설은 끝났다. 한시름 놓았다. 뭐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첨성대, 천마총도 돌아봤다. 다른 친구들의 설명도 서툴렀다. 그 서툰 매력이 좋았다. 같이 아는 걸 맞춰나가는 느낌이.잘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많이 알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첨성대가 별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별을 잘 보려면 보통 산으로 가는데 이건 그냥 맨땅에다 만들었다는 점이 그 증거다. 민심을 잡기 위한 선덕여왕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집중도 안 했을 텐데, 또래의 친구가 열심히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니까 동질감도 느껴지며 더 잘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이런 정보들은 마지막 날 경주 골든벨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와 삼걸이가 우승을 했다)


역사에 가려진 현실


우리 모두 핵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 죽고 다친사람들의 수는 상상 그 이상이다. 또 방사능에 피폭되어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하거나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거나 사산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핵의 위험성을 깨달은 세계 곳곳 사람들은 목소리를 모아 사용하지 말자고 했다. 이런 무기를 발명하던 과학자와 회사는 돈 벌이가 사라지니 그쪽 입장에선 어이없는 일일 순 있다. 그래도 절대가치관인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핵으로 무기를 만들지 못하자 에너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로 엄청난 홍보효과를 봤다. 솔직히 화력발전소만큼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것은 없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위험한 방사능이 돌아다닌다. 아까 위에서 말했듯이 이 방사능은 피폭된 사람뿐 어니라 후손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현재 배출한 핵폐기물들은 가장위대한유산이 될 듯싶다. 십 만년이 지나야 없어지는 저 위험 물질은 지금 당장이라도 멈춰야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원전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고, 면적에 비해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다. 그 중 몇개는 경주에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여행을 준비하며 처음 알았다. 한국의 문화유산이 가득한 경주에 그 위험한 걸 만들었다고? 믿겨지지 않았다. 또 사용 후 핵연료, 핵폐기물을 저장할고준위 핵폐기장이 지어지고 있다. 경주는 이를 지을만한 땅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방사능이 세어나오지 않게끔 땅이 딱딱하고 튼튼해야하는데 공사를 진행하는 지금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공사는 이어졌다. 왜 경주에 짓게 되었을까? 정부는 보상금 3000억을 걸고 신청을 받았다. 예산이 부족하다 느낀 지방 세곳이 신청을 했다.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가장 찬성이 많았던 경주가 되었다. 이 투표는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핵 발전소는 양남면 나아리 마을에 지어졌다. 그리고 이 발전소에 우리가 방문했다.


아름다운 바닷가에 내리니 주상절리가 보였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던 와중 고개를 살짝 드니 저 멀리 발전소의 실루엣이 보였다. 막상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은 기분과 갑작스러운 두려움, 이 두 감정이 섞였다. 하지만 바다를 보면 또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발전소에 가까워질 수록 형체는 뚜렷해졌다. 걸어가는 동안 간간히 사람들이 보였다. 평소와 같이 마트를 연 아저씨, 동네 정자에 모여 낮술하는 어르신, 그리고 제한구역을 넘어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그렇다 우리는 제한구역을 넘었다. 너무나 손 쉽게. 아무도 우리를 말리지 않았다. 정말 만약 진짜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사망 할 수도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재미있던 점은 그 구역 안 이었다.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도 있고,텐트를 친 사람도 있고, 핵발전소 바로 옆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주르륵 앉아 있었다. 전혀 위험을 알리는 제한구역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보다 더 재미있던 점은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홍보해주는 홍보관 마저 제한구역 안에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길 바라는 마음에 만든 것이 홍보관 아닌가? 마치 만들어놓았지만 오지 말라는 것 같았다. 숨기는 것이 많아서 그런 걸까? 선생님에게 이 정보들은 잘못되었다고 들으며 본 전시관은 처음이었다. 홍보관은 이름에 맞게 좋은 점들만 포장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탈핵에 대해, 또 핵의 위험성에 대해 몰랐다면 혹 하고 넘어갔을 정도다. 아직 우리가 탈핵으로 갈 길은 먼 듯싶다.


우리의 역사가 담겨진 유적지를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이주정책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 이주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월성원전 이주대책 위원회에서 활동하지는 나아리 주민 신용화 사무국장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하고 연대를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뭐라도 함께 해달라고. 이 말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이 나의 겉모습만 보고 먼저 판단하는 것이 싫다. 하지만 나도 경주에게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기피하던 유적지들과 역사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니 정말 흥미로고 재미있었다. 신라시대 건물 외관의 의미,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또 유명한 관광지에 가려진 핵발전소의 아픔도 알게 되었다. 경주라는 이름에 가려져 내가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그 깊은 이야기들을 먼저 알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내 또래 청소년들도 이 사실을 알고 경주를 그만 피했으면 좋겠다. 경주야!몰라 봐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