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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2018.06.04
아슬 2018.06.04

2018.5.27.

<경주 에세이>

이해하면 오해하고 오해하면 이해하고

아슬(김민재)

 

동해는 깊고 차갑다고 네이버사전이 그랬다. 나아마을에 갔을 때 옆에 동해가 있었다. 친구들은 주상절리에 돌을 던지거나, 물수제비를 하거나, 발을 담갔다. 뒤에서 사진 찍느라 발 한번 담그지 않은 나는 사실 동해가 차가운지 알 수 없었다. 동해해변은 모래해변이 아니었다. 해변엔 돌이 많아서 넘어질 뻔 했다. 항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상절리가 발견 된지도 얼마 안 되었다. 로드스꼴라 사람들 말고는 해변주위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평일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경주가 동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 못했다. 경주하면 첨성대가 떠올라서 그런지 육지만 있고 바다는 없을 것 같았다. 경주 밑이 포항인데 말이다.

팀별여행주제를 뽑았다. 지도였다. 지도를 그리란 건가. 주제가 이상했다. 좀 꺼려지기도 했다. 나는 땅 모르는 땅친데. 지도 못 그리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소금냄새가 진동했다. 앞에는 바로 바다가 있었다. 탈핵행진을 하고 온지라 온몸이 끈적했고 머리가 아팠다. 아마 버스에서 얼마 되지 않은 잠을 잤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아픈 채로 걸어서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주상절리의 모양이 화산 모양이었는데, 정말 화산이 분출한 것이었다. 이걸로 주상절리를 두 번인가 본 것인데, 딱히 감명을 받진 못했다. 크기가 작아서 그런 것 같았다.

주상절리를 보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모래가 없어서 정말 좋았다. 대신 돌이 많았다. 돌은 신발로 들어가지 않으니 모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앞이 확 트여있는 걸 보는 게 오랜만이었다. 바다에 홀려 걷다보니 앞을 못 봐 사람들이랑 부딪힐 뻔했다. 등대, 바위, 바다 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는 핵발전소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동그란 게 귀엽기도 하고 커다란 게 무섭기도 하다

 

사실 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1,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나올 때만 아, 핵 한다. 크고 무서운 건 맞으나, 내가 살면서 핵을 맞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랑은 전혀 관련 없는 일이고 그런 건 예전이나 있었으니까 말이다.

 

경주 오기 전에 10대와 통하는 탈핵이야기를 읽었다. 김익중 선생님이 쓰신 부분을 읽었는데, 핵발전소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사실 구조는 간단했다.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이 일어나 생긴 열로 물을 끓이고 증기가 나오면 그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증기는 바닷물로 식혀 물이 되고 다시 끓는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료가 우라늄인 것이다. 하나를 깨트리면 옆에 애를 깨트리고 그 애가 다시 다른 애를 깨트리는 게 우라늄이다. 우라늄은 깨지면서 엄청난 열을 발생하는데 이 열이 4년 동안 지속된다.

좀 더 들어가면, 중수로와 경수로로 나뉜다. 중수는 중수소와 산소를 섞은 물이고, 경수는 일반 물이다. 경수는 가압형과 비등형으로 나뉘는데, 가압형은 물에 150~160정도의 압력을 가해 끓는점을 높인다. 한마디로 매우 높은 열로 물을 끓이는 것이다. 비등형은 원자로에서 가열한 증기로 직접 터빈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파이프가 끊기게 되면 열은 계속 올라가게 되고 결국 노심 용융이 발생한다. 노심 용융은 녹은 핵연료가 뭐든지 다 녹여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이 바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다. 라고 김익중 선생님은 말씀하시며 어려운 이야기를 하셨다. 사실 구조가 정확히는 이해되지 않아 계속해서 찝찝하다. 중간에 씨앗이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어쨌든 무슨 차이가 있는 건 알겠고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도 알겠다. 노심 용융이 말이다.

 

핵발전소를 처음 본 것이었다. 위압감을 느꼈다. 꽤 거리가 있어서 크기가 큰지 실감이 안 났다. 크기 때문에 위압감을 느끼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있는 핵발전소가 참 여러 곳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 위압감을 느낀 것이었다. 월성 1~4호기는 사형제 같다. 동글동글한 것들이 나란히 있는 게 꽤나 귀여웠다. 무섭기도 했다. 그 귀여운 것들이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게. 카메라를 들어 찍었다. 사진에는 위압감 없는, 귀엽고 무서운 핵발전소만 담겼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핵발전소가 그렇게 위험한가 싶었다. 분명 위험한 건 알겠고 피폭된 사람들만 봐도 알겠는데, 내가 느끼지 못하니 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문제를 못 느끼는 둔한 사람인가보다.

나아마을에 가서 주민분들을 만나는 일정이 있었다. 주민분들이라고 하길래 네다섯 명은 될 줄 알았다. 단 한명이었다.

 

팔에 털 하나 올라가다

 

그는 나아마을에 살면서 사실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하니, 핵폐기물을 버리는 방폐장이 안전하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방폐장에 물이 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의 힘을 빌려 물이 새는 걸 막겠다는 말에 괜찮은 갑다 했다. 그래도 물이 샜다. 이번에는 말을 번복하여 인간의 최첨단 기술로 막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의심이 들어 인터넷을 뒤졌다. 방폐장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고,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에 방사능 수치를 제보니 많이 나왔다. 자신뿐만 아니었다. 딸아이도 그랬다.

처음에는 방폐장이 위험하다고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 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방폐장의 위험성을 말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지금은 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성함은 신용화였다. 방사능 수치가 다른 사람들 보다 많이 나왔다. 분명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데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약간 두려웠다. 나와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두려웠다. 괜히 나도 그렇게 될까 싶었다.

그 분도 딸을 둔 엄마였고 나와 같이 숨을 쉬고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겨울에 여기 오면 안 되겠네요 라고 뱉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이 나아마을 주민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사는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됐는데 누군가 와서 여기 오면 안 되겠네요 라고 하면 정말 화가 날 것이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사람과 사람, 동등한 관계를 가지는 방법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큰 오만이었다.

 

가야 될 시간이 다가오자 신용화주민분(사무국장님)이 마무리를 지으면서 말하셨다. 강요는 아니지만 알고만 가는 게 아니라 가서 작은 발버둥이라도 쳐줬으면 좋겠다고. 많이 찔렸다. 자연스럽게 또 알고만 가려했다. 작은 발버둥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부담을 덜어주시려고 그러신 걸까. 팔에 털 하나가 섰다.

 

햇볕이 내리쬐었고 머리는 뜨거웠다. 더위 때문에 온몸은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그 상태로 버스좌석에 앉아 생각했다. 해가 지면서 창문으로 빛이 들어왔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너무 힘들었는지 생각이 확장되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렀다. 어떡하면 내가 어떡하면 탈핵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무작정 탈핵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미르가 전체 닫기모임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한수원과 거래를 하신다고. 탈핵은 맞는 거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수원과 일하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은 탈핵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건 뭘까. 혼란스러워 잘 모르겠다고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핵발전소에 들어가는 노동자들. 그들에게도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잘못을 물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봤지만 내 멋대로 생각하는 거라 확신을 내릴 수 없었다.

 

 

나아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었다. 바다와 길 사이에 낮은 벽이 길게 있었다. 아마 바다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듯 했다. 그 장소에선 바다가 보일락 말락 했다. 햇빛은 강했고 바람은 불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빨리 가야하는 상황이어서 찍지 못했다. 돌아올 때 꼭 찍어야지 했는데 돌아올 때는 바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그 장소에 가지 못했다. 나아마을 하면 그 장소가 떠오른다.

나아마을 주민분들은 나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해였다.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도 오해였다. 오해는 많았다. 자기검열을 했는데, 그건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할 때였다. 자기검열은 사실 필요하지 않았다. 혼자 생각해봤자 모르기 때문이다. 오해와 이해가 많았고, 지금도 많다. 오해와 이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