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 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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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2018.06.05
아슬 2018.06.05

탐방리뷰

2018.5.31

아슬

 

기억교실, 기억저장소, 기억과 약속의 길. 기억이 세 번이나 들어가는 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일 것이다. 평소에 기억이라는 말을 잘 하지도 않는데다가, 기억하는 것은 귀찮고 힘든 일이다.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걸 잊으려고 하지 기억하려고 하진 않는다. 아픈 기억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외출이었다. 날이 화창해서 기분 좋게 탐방 가려 했지만 세월호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장소에 간다길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늘은 맑았지만 햇볕이 따가워서 좋았던 기분은 어느새 살짝 우울한 상태로 바뀌었다. 단원고 교실을 재현한 곳에 들어가기 전 세미나실 같은 곳에 앉아 영상을 보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만든 노래였다. 이름이 쭉 나오는데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정신이 산만해져있었다. 2학년 6반에서 7반으로 넘어갈 때 성민재라는 이름이 보였다. 흔한 이름이었고, 나와 같은 이름인 희생자가 있는 게 희한한 일도 아니었는데, 난 멍해졌다.

기억교실에 들어가서 다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성민재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았지만, 몇 반인지는 더위 때문에 정확이 기억이 안 났다. 교실을 헤매다가 위층이 있다는 걸 알고 올라갔다. 한참 돌아다니다 2학년 7반 학생부를 봤다. 성민재. 동그라면 동그랗고 찢어졌으면 찢어진 눈을 하고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넘긴 모습은 꽤나 훈훈하고 귀엽게 보였다. 그 애는 오른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책상에는 액자와 편지들이 놓여있었다. 인기가 좋아 보였다. 편지를 읽는 게 훔쳐보는 거 같아서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자친구가 있었다. 오글거리는 말투와 하트가 많이 있는 걸 보고 한 달 정도 사귀었네 했는데 정말 그랬다. 여자친구는 편지 두 장을 쓰고 방명록에 두 개의 글을 남긴 후에는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 글도 있었는데 읽기가 힘들었다.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눈물부터 고였기 때문이다. 성민재는 학원에서 선생님들에게 장난치는 개구쟁이였다. 까불대는 모습이 그립다며 여러 선생님들이 글을 남기고 가셨던 걸 보면 인기가 좋았나보다.

기억교실을 나와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걸었다. 기억과 약속의 길이라길래 무언가 있겠지 싶었는데, 그건 학생들이 평소에 걸었던 길이었다. 오묘했다. 2014년에 한순간에 사라진 학생들이 걸었던 길을 2018년에 걷는다는 게. 시간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걸어서 기억저장소로 갔다. 피시방 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좀 작았다. 천장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붙여진 전등이 등불모양으로 있었다. 그 등불 안에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던 손목시계나 식권 같은 게 들어있었다. 성민재를 찾았다. 성민재의 등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실망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이 학생들에게 쓴 글을 엮은 책이 있었다. 몇 개의 글을 읽다가 읽기 힘들어 성민재를 찾았다. 아까 방명록에 아버지가 쓴 글이 없었는데, 이번에 글을 쓰신 건 아버지였다. 콩이. 성민재의 별명이었다. “우리 콩이 수학여행 가기 전에 친구들이랑 힘 좀 써야 된다고 고기 맛있게 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말씀 중에 이 말이 기억 남는다.

 

기억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기억은 좋은 기억이 있고 나쁜 기억이 있는데, 그걸 다 기억하기에 내 머리는 너무 작고 넣기도 거부감이 든다. 그런데 한순간에 사라진 자식들의 부모들도 그럴까? 잘 모르겠다. 아직은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고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있다는 것만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