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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576> - 온

사할린 땅에 발을 딛기 전에 하늘에서 먼저 접했다. 하늘에서 본 사할린은 온통 주황빛이었다. 주황빛의 나무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이었다. 왜 땅의 면적은 한반도만 해도 인구는 50만여 명 밖에 되지 않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숲 사이로는 왠지 모르게 곰이 보인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자연적인 모습에 멋지고 공기는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의 읍내와 비슷하게 시골일 것이라는 생각에 뭔가 많이 없을까봐 살짝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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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자 할머니 민박> - 토마 


사할린 이튿날. 아침에 버스를 타기 위해 이춘자 할머님 민박집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마자 보이는 굴뚝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한국과는 다른 사람 그리고 풍경들. 내가 사할린에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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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번 버스> - 지나


유즈노사할린스크에 도착해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이춘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민박집이었다. 그 민박집에서 레닌거리로 나갈 수 있는 버스 중 하나가 81번 버스였다. 그 버스는 우리가 사할린에서 처음으로 탄 버스이자 가장 많이 탄 버스가 되었다. 러시아에는 버스에서 버스요금을 받는 계산원이 따로 있다. 또 영수증을 늘 뽑아주는 등 러시아와 한국의 문화 차이를 처음 느낀 곳이기도 했다. 버스 안의 낯선 사할린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실감했고 또 그 안의 새로운 문화에 섞여 들어갔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서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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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사코프> - 뽀글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항구도시 코르사코프. 사할린으로 징용된 조선 사람들은 45년 광복 이후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코르사코프로 모였다. 하지만 조선으로 가는 배는 있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몇몇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몇몇은 배를 기다리다 패인이 되어 죽기도 했다. 그것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망향의 언덕 위령탑. 앞으로는 많은 공장과 뒤로는 주택단지들이 보였다. 지금 언덕 근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옛날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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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언덕> - 차나


이곳은 코르사코프의 망향의 언덕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묵념을 한 뒤 노래를 불렀다. 위령비 앞에서도 불렀고, 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고도 불렀다. 광경 역시 멋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노래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불렀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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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고려신문에 로드스꼴라가 떴다> - 겨울


8기가 강제동원과 사할린 한인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며 그 시절, 사할린 한인 분들께 많은 힘이 되었던 새고려신문사에 방문했습니다. 새고려신문은 1948년 하바로브스크에서 조선노동자신문이란 이름으로 첫 호를 발간했습니다. 새고려신문의 배순신 사장님은 공산당의 기관지 역할로 시작했던 신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며 무엇보다 우리글로 발간된 것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1950, 하바로브스크에서 사할린의 유즈노사할린스크로 이사 온 신문사는 사할린 한인 사회의 조선어를 이어오는데 큰 기둥이었다고 합니다. 91,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로 새고려신문으로 이름을 변경한 이후부터 한인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와 고향 땅의 소식을 신문으로 만들었습니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며 새고려신문에 로드스꼴라의 이야기를 써줄 것이라고 말한 배순신 사장님은 정말로 우리를 신문 1면에 떡하니 써주셨습니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고 멋있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로드스꼴라 8기는 새고려신문에 많은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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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УЛ. МИРА> - 유키


깨끗한 공기와 노을이 조화를 이루어 나의 시선을 훔쳐갔다. 깨끗한 공기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얼마나 친절하던지. 유즈노사할린스크에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기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된다. 차가 멈추고 사람에게 지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깨끗한 공기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사할린에 매력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러시아어만 잘한다면 여기서 살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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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호마을 27인추념비> - 융재


이 사진은 포자르스코예에 있는 미즈호마을 27인 추념비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와 사할린한인회의 박순옥 회장님과 사할린한인노인회의 김홍지 회장님이 타고 온 승용차이다. 미즈호마을은 사실 스물 일곱명의 조선인이 안타깝게 죽은 곳이다. 미즈호마을에 살던 일본인들은 일본이 패전할 무렵, 소련군이 남사할린으로 진격하자 조선인들의 보복이 무서워 이런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한 마을에 함께 살던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구실을 가지고 사람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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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크로 가는 버스> - 신비


홈스크에 가는 버스에서 책을 읽다 우연히 창문을 보았는데 눈이 쌓인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첫날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는 단풍이 들어있는 나무와,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보고 가을을 느낄 수 있었는데 홈스크에서는 겨울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가을도 느끼고 겨울도 느낄 수 있는 사할린.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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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크 한인회 점심식사> - 조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도시 홈스크에서의 삼일은 나의 사할린 일정 중 가장 특별했던 날들이었다. 홈스크에서 우리는 거의 모든 일정을 홈스크 한인회 분들과 함께했다. 그럴 필요 없다는 말에도 구지 시간을 내어 홈스크 구경을 도와주시고 궁금해 하는 것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셔서 우리는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도시를 즐길 수 있었다.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에서는 우리에게 맛있는 한국식 밥상을 차려주셨다. 직접 만든 김치와 젓갈, 자주 드신다는 비트 샐러드와 토마토 피클, 러시아와 한국이 오묘하게 섞여 들어간 즐거운 식탁은 정성이 가득했다. 식사가 끝나고 숙소로 가는 우리에게 만들어 오신 러시아 팬케이크 블리니를 바리바리 싸주시고, 떠나는 날에는 단호박 지짐과 과자를 손에 쥐어주시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감사한 일만 잔뜩 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홈스크 한인회 분들의 따뜻한 환대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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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 - 오쭈


은 하늘과 키가 큰 나무들,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사할린에서의 여행이 벌써 반이나 지났다. 낯선 환경에서 처음 말 걸기도 눈치 보던 8기가 지금은 짧은 러시아로 생존해가고 있다. 아직 더 배울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이 남았지만 벌써 지나버린 11일이 아깝게 느껴진다. 남은 9일을, 216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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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분 할머니> - 소하


문화센터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러 갔다가 예상치 못한 할머니 분을 만났다. 한인 1세 할머니셨다. 한인 1세분은 다 돌아가셨을거라 생각해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라며 말씀 하셨다. 거동조차 힘드실 텐데 우리를 보러 오신 할머니에게 너무 감사했다. 마지막에도 우리에게 아프지 말라고 손을 잡으시면서 당부하셨다. 할머니 손녀도 아니고 단지 한국에서 여행 온 학생인데 진심으로 환대해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언젠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환대를 해줄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