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ten Tag!
로드스꼴라 떠별들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지나 남쪽에 도착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14일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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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_ 독일에서의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서울의 거리, 교실의 물건, 버스 번호를 잊어갔다. 
머릿 속 그 자리에 베를린의 거리, 보봉 마을, 아이스크림 가게 위치를 기억했다. 
때론 두 무릎 가득 풀 물들게 달렸고, 
때론 전쟁을 스쳐 지나온 이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독일의 거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천천히 흡수하며 한국으로 가져갈 이야기를 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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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 _ 대학생분들과 하루 팀을 만들어 여행을 다녔던 날이다. 
어떤 일정도 짜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가며 
샤를로텐부르크 성 안에 들어가 잔디 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웠고 행복했던 시간이었기에 그 때 찍었던 이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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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_ 베를린대성당 앞 잔디광장
가장 행복했고, 즐거웠던 장소이자 시간. 
아무 생각 안하고 누워서 편하게 맑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잠이 오는 나른한 햇살이 비춰 가장 인상깊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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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 _ 카이저빌헬름교회

 카이저빌헬름교회는 독일을 처음 통일한 프로이센 왕국의 첫 번째 왕 빌헬름 황제의 이름으로 지어진 교회다. 
1941년, 독일에 나치당이 집권하며 시작된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에 독일의 많은 마을들이, 그리고 그 안의 성당과 교회들이 파괴되었다. 
카이저빌헬름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격에 맞은 교회는 정면의 대문과 그 주위 구조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붕괴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사람들은 파괴된 시설들을 하나 둘 재건했다. 
그들의 역사가 담긴 궁전과 성당, 교회들 역시 복원했다. 
하지만 카이저 빌헬름 교회만큼은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황제의 이름을 따 웅장하던 교회를 파괴된 모습 그대로 둔 것이다.

 내가 카이저빌헬름교회에 도착했을 때, 교회 문은 6시가 넘어서 닫혀 있었다. 
어차피 대문 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들어가지 못한 건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폭격에 그슬리고 무너졌을지언정 압도적인 입구의 크기와 
옛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움을 고고하게 간직한 장식들에 감탄했다. 
어쩌면 오히려 무너져 있던 그 모습에서 감탄한 것 같기도 하다. 
독일인들의 전쟁을 기억하려는 비장한 마음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싶었지만 어차피 들어가지 못할 교회에 오래 있을 여유는 없었다. 

훗날(?) 나는 베를린돔, 상수시궁전, 그리고 뮌스터 대성당까지 웅장하고 정말 크고 인상적인 건물들을 보았지만, 
그것들과는 다른, 입구만 본 카이저빌헬름교회는 잊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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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_ 체크포인트 찰리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나는 분단을 경험 한 세대도 아닌, 전쟁을 경험 한 세대도 아니었다. 
분단과 전쟁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공감이 어려웠고 항상 한발짝 정도 뒤에서 바라봤다. 
할아버지 생애사를 쓰면서 할아버지가 전쟁과 분단을 경험했고, 
가족과 떨어지게 된 이야기를 아주 짧게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땐 별로 의식 하지 않았던 것들이 베를린에 온 지금 이제서야 생각나기 시작한다.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의 분단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독일의 통일. 
분단을 경험한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지금,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내가 어떤 것들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올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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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_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바쁜 여행 중 마음의 안정을 준 신호등의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렸을 신호등 위의 그림이 재미있었고, 
이 낙서를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마음으로 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었고 
그때만큼은 바쁜 일정도, 막 오는 트램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사람한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독일에 오지 않았으면 저걸 볼 수 있았을까. 사진첩에는 화려한 대성당과 궁전의 사진도 많았지만 나는 이 사진을 골랐다. 
바로 후회하긴 했다. 독일은 이렇게나 멋진 게 많은데 이 사진을 고르다니. 
그래도 그 순간이 멋졌기에 저런 사소한 기쁨들이 7일 남은 여행에 종종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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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별 - 베를린 여행, 바쁜 일정 속 잠깐의 휴식시간에 우리팀은 잔디밭으로 향했다. 
그날의 햇빛은 눈부시고, 따뜻했다. 
바람은 살살 불어왔고, 잔디밭에 앉아있었던 우리는 이내 누워버렸다. 

고개를 돌려보면 베를린 돔이 있고, 은행나무길 사이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잔디밭에는 우리처럼 앉거나 누워서 여유를 즐기고, 누군가는 분수대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이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풍경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한국에는 잔디밭도 별로 없고, 있다해도 막 앉고, 누울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 해도 주변 풍경은 회색 건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잔디밭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잔디밭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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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걸 _ 기억의 무게, 책임의 무게, 민간인을, 어떤 민족을 말살하려 든 죄의 무게
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져보았다. 
2711개의 비석과 육백 만의 피해자들. 
저 비석 하나가 몇 천 명의 피해자들을 기리고 있는 걸까. 
차갑고, 매끈하고, 또 차갑던 비석들이 빼곡히 들어선 그 곳. 엄숙함을 느낄 수 밖에 없던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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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_ 너무나 떨려 하지 못할 것 같던 8,9기의 버스킹이 성공리에 진행 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똑같이 부르지만, 
지금 이곳은 한국이 아닌 독일이고 내 앞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아닌 낯선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우리의 노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표정과 춤을 보며 
노래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함께하는 소중함을 일깨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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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 _ 땅 위에 하늘. 당연한 풍경이 어째서인지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언제부터 땅이 회색이었을까. 언제부터 하늘이 이렇게 좁았을까. 지평선이 네모난 시대는 언제부터였을까. 
도시에 살다보면, 사람은 분명 자연에서 태어났을 터인데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자연과 동떨어져있을까 싶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자연 속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초원을 뛰노는 개들을 보면 내가 왜 개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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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_ 독일의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알록달록 발코니들이 눈에 뛴다. 
베를린에서 통역을 맡아주신 어진께서는 독일 사람들은 발코니를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게다가 약간의 경쟁심리도 있다고 했다. 
너무 깜찍한 이야기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다. 

본인들은 자기만족으로 발코니를 꾸몄겠지만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나는 꽃들로 풍성한 발코니를 보면 좋은 기분이 든다. 
화려한 대성당도 제쳐두고 독일의 발코니 탐방을 하라고 해도 할 마음이 꽤나 있다. 
출근길도 퇴근길도 놀러가는 길도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알록달록한 작은 꽃밭이 있는 독일 사람들이 조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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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_ 그 유명한 이스트사이드갤러리. 그곳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사람이 워낙 많아 눈치를 잘 보고 얼른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전 처음보는 사람의 인생샷을 담아내게 된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베를린에 세워졌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이다. 
통일 후에 사람들이 벽화를 그린 것을 일부 보존해놓은 곳이다. 
베를린 장벽의 조각은 이젠 고가에 거래되기고 하고 일부는 이곳처럼 관광지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곳을 쭉 따라걸으며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고 강가에서 쉬기도 했다. 
문득 한반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엔 남쪽에 과거시절의 분단을 기억하는 박물관이 생길까? 
북쪽에 3.8선을 돌며 구경하는 코스가 생길까? 
한반도의 사람들은 언제쯤에야 통일절을 기념할 수 있을까? 
한민족을 남측과 북측으로 나눠 부르게 만든 우리의 장벽은 언제쯤 무너질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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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 _ 슈톨퍼슈타인. 
한국어로는 걸림돌. 
이것은 일부러 사람들이 걷다가 발을 헛디딜 수 있도록 만든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에는 ‘그가 여기 있었다.’ 라는 문구와 함께 그의 이름, 출생년도와 죽은년도가 적혀있고, 
그는 바로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이었다. 
멀쩡히 있던 인도에 블럭을 깨고 걸림돌을 설치한 이유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자는 의미였다.

 슈톨퍼슈타인을 보면서 내가 어떠한 사건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억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떠한 사건을 특정 기간에만 기억하고 추모한다. 
4월 3일엔 제주 4.3사건을, 4월16일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기억과 일상은 분리되어 있고, 
특정 날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었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것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길거리에 ‘그가 여기 있었다.’라는 문구가, 도시 중앙에 장벽이, 또 장벽 옆에 장벽을 넘다가 죽은 사람들의 사진들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방식은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통일의 기쁨보단 분단의 아픔을. 
광복의 기쁨보단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아픔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독일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야 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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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_ 베를린 일정 두 번째 날, 
시차와 낯선 공간에 적응하며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 베를린 대성당에 도착했다. 
화려한 성당 앞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었다. 
도시 속에 오래된 건물도 여유있는 시간도 함께한다는 게 좋았다. 
잔디밭에 눕자 등이 차갑고 딱딱했지만 내리쬐는 햇살이 따뜻했다. 
눈앞에는 베를린 대성당의 화려한 조각과 구름도 없이 파란 하늘도 있었다.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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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