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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선택)  

[로드스꼴라] 어른들을 위한 로드스꼴라, 첫 번째 여행  - 쿠바

2016년 1월 2일 ~ 1월 24일, 22박 23일


여행 기획 및 진행: 어딘
실무 담당자: 이길보라
글 작성: 이길보라
사진 제공: 김현영, 박영숙, 이길보라, 이인재


아바나 HABANA

쿠바 아바나의 여행 필수 코스! 혁명 광장 Plaza de la Revolución

1920년대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 광장을 모델로 장 클로드 포레스가 계획· 구상한 광장입니다. 이곳은 쿠바혁명 이후 ‘혁명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현재 쿠바의 대규모 집회는 대개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매년 2번, 노동절(5.1)과 쿠바혁명 기념일(7.26)에 혁명 광장에서 큰 집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혁명 광장 중심에 서면 체 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의 얼굴이 그려진 건물 두 개가 보입니다. 뒤로는 호세마르티 기념탑과 박물관이 자리해 있습니다. 중요한 행사 때마다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는 이 광장에 나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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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현영

호세마르티 기념탑&박물관

쿠바 혁명의 영웅이며 사상가이자 시인인 호세 마르티를 기념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호세 마르티 탄생 100주년인 1953년에 착공하여 1958년에 완성했습니다. 기념탑은 오각형의 별모양으로 층을 쌓아올린 형식입니다. 별은 공산 혁명의 상징이기도 하고 이곳이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임을 의미합니다. 기념탑의 높이는 109m이며, 탑의 1층에 자리 잡은 기념관은 총 4개의 살롱으로 구성되어 호세 마르티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또한 혁명 1세대로서 쿠바 혁명을 준비했던 이들의 사진 및 이야기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2사진: 김현영


아바나 국립극장 Gran Teatro de La Habana & 발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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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인재

1837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인 아바나 국립극장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장입니다. 많은 인파를 뚫고 들어간 아바나 국립극장은 정말 말 그대로 고풍스러운 건물이었습니다. 쿠바 국립 발레단의 발레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살사 수업&살사바

이 프로그램은 쿠바를 여행하려면 꼭 살사를 알아야 한다는 정호현 감독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한 번에 한 시간씩 총 6번 수업을 했습니다. 쿠바에는 여러 댄싱 스쿨이 있는데요. 저희가 춤을 배웠던 댄싱 스쿨은 꾸리라는 엄청난 춤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시는 곳입니다. 쿠바 현지인과 눈을 마주치며 사인을 주고받고 살사를 배우면서, 쿠바를 그냥 여행하는 것과 살사를 배우고 추며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6회의 수업이 끝나고 살사 선생님들과 함께 살사바에 가서 함께 살사를 춘 것도 매우 즐겁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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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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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아바나 스터디 투어(기관 방문)

한인 후손 회관 –호세 마르티 한국 쿠바 문화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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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2015년 현재 쿠바 한인 후손은 8개 지역에 1110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인들은 쿠바의 라스투나스주 마나티항구에 처음 발을 내딛었습니다. 까르데나스 지역에 주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바나에는 265명이 살고 있고, 각 주마다 ‘한국 반장’이 있어 인구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인 후손 회관에서 안토니오 김(73) 선생님에게 쿠바의 한인과 이곳 한인후손회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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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폴리클리닉코

쿠바는 인구 100명당 1명 꼴의 의사를 갖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 가정의가 자기 담당 구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집니다.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는 간단한 수술까지 할 수 있는 폴리 클리닉코(2차 진료 기관)으로 보냅니다. 인구 100만의 아바나 시에만 약 100개의 폴리 클리닉코가 있습니다. 3차 진료 기관은 종합병원입니다.

 우리는 2차 진료 기관인 폴리 클리닉코를 둘러보았습니다. 또한 의사와 간호사 약 6명 정도에게 쿠바의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과 이곳 2차 진료기관 폴리클리닉코는 어떤 일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1차 진료 기관인 콘솔도리오로 이동하여 마을 안에서 이들이 ‘예방’을 목적으로 하여 어떻게 진료를 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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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사진: 박영숙

쿠바 국제 우호 친선 협회 부대표와의 미팅

쿠바 국제 우호 협회는 내부적으로 아시아 담당관, 한반도 담당관, 일본 담당관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쿠바와 외국 간의 전체적인 것들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가령 쿠바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의 사회생활 등 생활 유지에 대한 것은 쿠바 국제 우호 친선 협회에서 돕는다고 합니다. 쿠바 국제 우호 친선 협회의 부대표가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고, 아시아 담당관과 한반도 담당관이 추가적으로 설명을 도왔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 명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쿠바에서는 이렇게 여성들이 각 기관에 대표직을 맡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실제로 쿠바 내에서 여성 파워가 굉장히 강하다고 합니다. 쿠바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해 질의응답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7사진: 박영숙


쿠바 현재 경제 모델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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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현재 CENTRO DE ESUDIOS DE LA ECONOMIA CUBANA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 Jessia 교수에게 쿠바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쿠바 성문화 연구소 방문

 이곳에서 연구를 하는 Ceiar Henera Hankey(26)에게 쿠바 의 전반적인 성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혁명정부 자체는 이성애를 고집했지만, 현재 쿠바 내부적으로는 퀴어 축제 및 성교육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성애와 동성애가 공존하는 분위기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여행자가 이곳에서는 피임법을 어떻게 교육시키냐고 물었는데 담당자가 “피임법은 다른 나라와 같다. 그러나 가장 좋은 피임법은 ‘상대방과의 대화’다”라고 말했던 것이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쿠바의 전반적인 성문화와 쿠바의 페미니즘, 그리고 현재 쿠바에서 쟁점적인 성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9사진: 박영숙9-1사진: 박영숙


음악학교 방문

우리가 방문한 아바나의 음악학교는 총 23개의 과로 이루어져 있고, 312명의 선생님이 재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의 1:1 시스템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쿠바 전역에는 11개의 초등 과정 음악학교가 있고 19개의 중등 과정 음악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은 쿠바 전역에서 시험을 거쳐 선발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이고, 14세부터 입학이 가능합니다. 남녀 비율은 반, 반 섞어서 뽑으며 구체적인 시간표로는 오전에는 일반적인 과목의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각자의 전공에 맞춰 음악 수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음악학교 학생들의 뛰어난 연주와 노래를 들었고, 여행자 대부분이 교사였기 때문에 이 음악학교 시스템과 교육 방식에 대해 몹시 궁금해했습니다. 이 음악학교에서 17년 동안 교감으로 재직하신 Dianelys Valdés(44세, 여성) 선생님이 학교 설명과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10-110-2사진: 박영숙


초∙중∙고등학교 방문

쿠바의 초등 과정.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살부터 10살까지를 아우르는 초등 과정과 중등 과정에 해당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학교 학생들이 우리들을 환영하며 몇 가지 무용 공연을 보여주었고 시를 읽었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자존감이 몹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쿠바를 여행하는 내내 우리가 쿠바인들에게 감탄했던 지점이었습니다. 각 학년마다 교실을 이동하여 어떤 걸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반대로 쿠바 학생들도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실마다 체 게바라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이들은 혁명의 주역인 체게바라를 배운다기보다 인간으로서 체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배우고 그런 부분에서 그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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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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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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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미술학교 방문

미술학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과정이었는데 앞서 만난 초등 과정과 중등 과정에 속하는 학교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전공으로 미술을 배우고 있었고, 쿠바의 교육이 그렇듯 미술학교 역시 무상으로 교육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특히 실습비에 들어가는 재료비 역시 모두 무상으로 제공되며, 학생들이 수업 시간 외에 더 작업을 추가적으로 할 수 있도록 드는 재료도 넉넉하게 구입을 한다고 합니다. 미술 담당 선생님이 우리를 학교 곳곳으로 안내해 주었고, 실기 수업을 진행 중인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페인팅과 비디오 작업의 수준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쿠바인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2사진: 박영숙

구아바나꼬아 박물관: 아프로 쿠바 종교 관련 설명

혁명 정부 초기 쿠바 정부는 종교를 탄압했으나 현재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교가 인구의 55%를 달합니다. 스페인 식민의 영향으로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회이고 쿠바 혁명 이전에 인구의 70%이상이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였습니다.(1957년) 그러나 카스트로 정권 아래 신자 수는 약 40%까지 감소하고, 종교 활동이 반혁명 활동으로 간주되지 않을 필요성 때문에 현재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교는 정부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로는 장로교 등의 개신교, 여호와의 증인,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와 요루바족의 전통 종교가 섞인 혼합 종교인 산테리아(Santeria)가 민중 종교로 존재합니다. 이곳 구아바나꼬아 박물관에서는 산테리아를 비롯하여 아바꼬아, 빨로몬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 종교의 기원과 그 종교에서 어떤 옷을 입고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쿠바의 종교를 통해 쿠바로 강제 이주한 흑인 노예들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인의 집

노인의 집은 쿠바에서 은퇴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노인정과 비슷하지만 시설이 굉장히 쾌적합니다. 남성 노인과 여성 노인이 매일 나와서 이곳에서 놀기도 하고 취미 생활과 여가 생활을 즐깁니다. 간호사도 있고 노인 돌봄을 전담하는 코디네이터도 있습니다. 쿠바는 아직까지 가족주의가 남아 있는 분위기라, 이곳이 아니더라도 독거노인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많이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방문하여 노인의 집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놀았습니다. 여행자 중 한 명이 한국 민요를 부르기도 하고, 함께 살사 댄스를 추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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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사진: 박영숙


알라마르 농장 방문

아바나에서 약 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라마르 농장은 도시 농업으로 대표적인 곳입니다. 쿠바는 소련에서 70% 정도의 화학비료를 구입하고 있었는데, 이후 비료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도시 농업, 유기농 농업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50만 명 정도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중 80,000명, 1/4정도가 여성입니다. 그 중 40,000명이 60세 이상의 연령대입니다. 쿠바에서는 이것을 제3의 나이, 제3의 연령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10,000명 정도가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Norma로부터 쿠바의 유기농 농업과 도시 농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본격적으로 알라마르 농장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서 길러진 농작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고, 몇몇 여행자는 땅콩 및 기름을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여행자들 중 생태와 유기농업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굉장히 흡족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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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14사진: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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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쿠바 지식인과의 만남- Gustavo Arcos Fernandez-Britto

UNIVERSIDAD DE LAS ARTES에서 쿠바 영화를 가르치는 Gustavo교수에게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Gustavo교수는 쿠바가 현재 경제∙문화∙사회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 무엇이며, 이것들이 어떤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또한 지금 쿠바의 지식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논의들을 펼쳐 가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어떤 일들을 모색하고 있는 지 등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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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꼬히마르 Cojimar

‘전망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꼬히마르는 센트로 아바나에서 동쪽으 로 1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적막하지만 풍경이 아름다운 조그만 어촌 마을입니다. 1555년 인디언들이 정착한 후에 아프리카 노예와 스페인 정착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확장되었습니다. 1976년까지는 구아나바꼬아에 속했다가 이후 아바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꼬히마르는 거주 인구가 2만여 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역사적 의미가 크고, 해변과 요새가 아바나 세계 유산의 일부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꼬히마르에 와서 자주 낚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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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헤밍웨이 생가 Museo Ernest Hemingway

센트로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약 13km 정도 떨어진 마을 산 프란시스코 뽈라에 위치해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1940년부터 1960년까지 20여 년 동안 거주했던 주택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1954년 소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의 삶을 기리기 위해서 1962년 7월 21일 저택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었으며, 세계에서 유일한 헤밍웨이 박물관입니다. 실제로 상류층 사람들과 자주 파티를 열었던 아주 큰 집이다. 동물들도 많이 키웠다고 합니다. 헤밍웨이는 실제로 동물을 사냥하고 박제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실제로 집 내부에 많은 동물 박제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17사진: 박영숙

바라데로

쿠바 서부 마탄사스 주 북부에 위치한 국제적인 휴양지입니다. 사바나 군도 서쪽 아카코스 곶에 위치하고 플로리다 해협과 접하고 있는 휴양 도시입니다.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140km정도 떨어져 있다. 대서양에 면한 해수욕장이 있고, 바라데로 해안과 술 해안이 길게 이어집니다.

아바나에서 바라데로의 리조트를 향해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마탄사스 주에 먼저 들어서게 되는데요. 마탄사스 주는 1921년 멕시코에서 이주해 온 한인들이 농장 일을 시작했던 곳인데, 현재 마탄사스주 카르데나스라는 지역에 가장 많은 316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마탄사스 주에는 쿠바 이주 한인들의 쿠바 이주와 정착을 기리는 한인 기념비가 있다. 한국을 떠난 지 100년째 되는 해인 2005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로드스꼴라는 아바나를 둘러본 후 꼬히마르를 거쳐 바라데로의 리조트에서 1박 2일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냈습니다. 쿠바에서 제일 놀랐던 것은 원하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우리가 살아왔던, 그리고 여행했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흔히 슈퍼마켓을 만날 수 있었고, 아주 쉽게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물 한 병 사는 것도 무척 어려웠습니다. 일단 아주 조그만 크기의 슈퍼도 주변에 별로 없고, 설령 슈퍼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물건이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생수 회사도 하나, 주스 회사도 하나, 콜라 회사도 하나, 사이다 회사도 하나. 모두 국영이었고 물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습니다. 아바나를 며칠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초콜릿 하나를 사려고 해도 슈퍼마켓 자체를 잘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쩌다 슈퍼마켓을 가게 되면 필요한 물건을 사 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게 된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포함되었고 무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시스템은 체크인을 하는 순간부터 내 팔에 끼워진 팔찌로 모든 것들을 쉽게 먹고 마시고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녹색 혁명과 유기 농법으로 유명한 쿠바지만 관광 수입을 위해 리조트가 들어서고, 그 리조트에 들어서면 ‘슈퍼마켓을 찾기 힘든 쿠바’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무제한 공급되는 쿠바’가 된다는 것. 또한 외국 여행자들을 맞이하여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며 고기를 굽고 칵테일을 만들어 내는 쿠바 현지인들을 마주하는 일은 그렇게 기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18-1사진: 박영숙

산타클라라 Santa Clara

체 게바라 박물관 Museo Memorial Che Guevara

체 게바라 박물관은 산타클라라에 있는 쿠바혁명의 국가 기념물입니다. 중남미 혁명의 선봉장이었던 체 게바라의 무덤이 있습니다. 쿠바혁명 30주년을 맞아 피델 카스트로의 지시 아래 기념관을 만들었고 6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88년 12월 28일 완성되었습니다. 기념관 입구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6m 높이의 체 게바라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 오른쪽에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편지가 적혀 있습니다. 체가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피델에게 보냈던 마지막 작별 편지입니다.

박물관에는 체의 연대기와 함께 그의 유니폼과 모자, 권총, 가죽 케이스, 사진기 등의 개인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왼편 묘지에는 볼리비아 전투에서 패배한 체 게바라를 비롯한 39명의 유해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볼리비아 전투의 유일한 여성 동지였던 따마라 분케(Tamara Bunke)의 유해도 있습니다. 쿠바 혁명을 만들어 냈고 인류의 또 다른 혁명을 위하여 볼리비아 전투에 참여했던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또한 체 게바라와 관련된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혁명 당시의 사진 자료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체 게바라 박물관 자체의 기념물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쿠바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였습니다. 

19-2사진: 김현영

19사진: 김현영

장갑열차 기념비 Toma del Tren Blindado

1958년 12월 29일, 체 게바라가 이끄는 24명의 행동대가 바티스타 정부군이 탄 무장 기차가 지나가기로 되어 있는 기차선로를 불도저로 끊어 버리고 기차를 탈선시켜 90분 만에 열차와 무기를 탈취한 장소입니다. 이후 혁명군은 12월 31일 산타클라라를 점령하게 되고, 이로써 독재 정권 바티스타는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그 당시 철로를 끊을 때 사용되었던 불도저와 그때 탈환했던 강철 기차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강철 기차에는 총탄 등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당시 사용되었던 화염병 제조 공병과 휘장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때의 현장 사진도 흑백사진으로 걸려 전시 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이 탈환을 기점으로 혁명의 판세가 달라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20-120사진: 이길보라

트리니다드 Trinidad

트리니다드는 쿠바 중부 상크티스피리투스 주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73,466명입니다. 1988년 로스잉헤니오스 계곡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514년 12월 23일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케야르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당시의 이름은 비야데라산티시마트리니다드(Villa de la Santísima Trinidad)였습니다. 트리니다드는 설탕 무역이 주요 산업이었던 시절의 유산이 남아 있는 도시이고, 현재의 주요 산업은 담배 가공업입니다.

트리니다드에서는 방문하는 곳마다 노예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하다못해 저택에 걸린 그림이나 사진에도 노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분명하게 노예가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쿠바에서의 노예의 삶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노예 감시탑, 건축 박물관, 대저택을 이르는 장소들에서 노예의 삶을 상상해보고 이 노예들이 어떻게 흘러 들어와 쿠바인이 되었고 이것들이 어떻게 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나게 되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여행지였습니다. 또한 도시 곳곳에 많은 예술품들을 팔고 있어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21사진: 이길보라

트리니다드 노예 감시탑

7층으로 이루어진 노예 감시탑의 높이는 45.5m입니다. 스페인 제국은 쿠바 땅에서 인디오들을 거의 몰살하고 난 후, 사탕수수 농업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수입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들은 사탕수수 밭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노예들이 생겨나자 스페인 농장주들은 이곳에 노예 감시탑을 세우고 노예들을 감시했습니다. 이때 스페인 농장주는 이들을 보다 더 잘 감시하기 위해 영국 식민지 하에 있었던 인도인들을 데려와 이곳에서 흑인 노예를 감시하는 중간 관리부로 그들을 고용했다고 합니다. 이때 트리니다드에만 50여개의 사탕수수 농장과 공장이 있었고, 트리니다드에 위치한 잉헤니오스 계곡이라는 지명도 ‘설탕 공장’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올라서면 보이는 탁 트인 전경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보다 더 아이러니하게 만듭니다. 흑인 노예와 그들이 일궈 낸 쿠바 안에서의 문화를 보다 더 잘 공부한다면, 또한 그것을 멕시코-쿠바에 이르는 한인 이주사와 연관시켜 공부하여 노예 감시탑을 여행한다면 보다 폭넓게 쿠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2사진: 김현영

트리니다드 건축 박물관

이곳은 18~19세기에 지어진 트리니다드 건축물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은 박물관입니다. 건물의 모형이나 창틀과 문, 벽과 천정의 재질이나 구조를 잘 분류하여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 박물관의 건물 자체는 원래 이스나가 가문의 소유였고, 입구에서 들어서면 살롱이 있습니다. 안쪽에는 주방이 있고 양 옆에는 방이 두 개가 있고 그 안에 작은 방이 두 개가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천장을 만든 나무는 트리니다드 나무고, 바닥의 대리석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했다고 한다. 파티오(정원)이 컸던 이유는 그 당시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자급자족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집이 두 채였지만 19세기에 두 채의 집을 합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천장이 높은 형식으로 건축을 하며, 각 방의 천장이 모두 뚫려 있습니다. 문은 일렬로 같은 크기로 서 있습니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문도 큰데 큰 문 안에 작은 문을 만들어, 평소에는 작은 문을 닫아 천장에는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은 나무로 벽의 뼈대를 세우고 그 안에 흙을 발라 만드는 식으로 건축했다고 합니다. 트리니다드는 처음에는 담배를 주로 키웠고 이후에는 사탕수수를 키우는 등 단일 작물을 재배한 곳입니다. 이곳은 주로 ‘쎄다’라는 나무를 사용합니다. 시기에 따라 천장이 높아지면서 나무문의 높이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창문 위에 그려진 문양이 시기별로 다른데 시기별로 유행하는 문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세기에는 네오 클래식(신고전주의)의 영향으로 하얀색이 유행했습니다. 18세기에는 기와를 사용했지만 19세기에는 목재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처마 길이가 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처마 길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또한 18세기의 우편함이 전시되어 있는데 트리니다드는 쿠바의 수도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연락이 힘들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1857년에 가스 시스템이 있었고, 한반도는 당시 조선시대 정조 시대였습니다. 19세기 트리니다드 양식의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스등이 방에 있는데 그 당시 시스템으로 배관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벽화는 그대로 보존이 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해설은 스페인어로 이루어졌는데, 해설을 맡은 쿠바 여성이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한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 제목을 얘기했습니다. 저희 여행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쿠바에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는데 그 이유는 쿠바와 달리 한국은 일부일처제를 당연하게 여기고 사랑에 목숨을 거는 모습이 너무 흥미롭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한국 남자들이 한 여자만 사랑하고 지켜 주려고 하는 모습이 쿠바 여행들의 마음을 끈다고 합니다. 쿠바에서는 자유롭게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드라마가 쿠바에서 열풍을 만들고 있답니다. 

23사진: 박영숙

트리니다드에서  말 타기

트리니다드에서 말을 타는 것은 호불호가 갈리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어떤 여행자는 말을 타는 것이 너무 힘들어 도중에 돌아가기도 했고, 어떤 여행자는 말을 타며 만났던 해질녘 풍경을 보고 “내 생애 언제 다시 이런 것들을 만나 보겠어요.”라며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쿠바의 아름다운 자연과 해질 녘의 그 시간에 말을 타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는 일은 너무나 매혹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 타기 프로그램으로 인해 많은 여행자들이 진물이 나고 약을 바르는 등 일주일 정도 아파했지만, 말을 타고 거닐었던 트리니다드의 자연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다음부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보다 더 충분한 수의 마부, 경험 있는 마부를 미리 섭외하여 여행자 별로 안장-발걸이의 길이를 충분히 맞게 한 다음, 기초적인 말 타기를 교육한 후 말 타기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24사진: 이인재

안꼰 비치 Ancon Beach

안꼰 비치는 카리브 해에 면하는 유명한 해안가입니다. 트리니다드 시내에서 약 30~40분 정도 택시를 타고 가면 있는 곳인데, 우리는 공식 일정 상 안꼰 비치가 없기 때문에 트리니다드의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개별적으로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행자 모두 ‘캐리비안 해’를 보고 가야 한다며 한 명도 빠지는 사람 없이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날씨도 비교적 쨍쨍했고 여행자 모두 신나게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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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현영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마요르 광장은 트리니다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18~19세기에 트리니다드는 설탕과 노예무역으로 크게 번영했는데, 그때 쌓은 부를 바탕으로 부루 넷 백작과 귀족들은 마요르 광장 주변에 호화로운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당시 세워진 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 한 박물관을 연상시킵니다. 광장은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가로동은 19세기의 고풍스런 장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뮤즈 여인상이 있고, 그 옆에는 18세기에 건축된 산체스 이즈나가의 집이 있습니다. 광장 북동쪽에는 1892년 건축된 삼위일체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파로키알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Iglesia Parroquial de la Santisima Trinidad 성당입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는 1892년에 완공되었고, 내부는 신 고딕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교회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까사 데 라 무지카가 있습니다. 

26사진: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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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길보라


비냘레스 Viñales

태곳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 비냘레스. 과일, 건초, 시가, 커피의 경작지로 유명한 비냘레스는 시가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재배되어 전 세계적으로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도시라는 느낌보다 시골의 한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버스를 타고 비냘레스를 향하는데 비가 억수 같이 내렸고, 몇몇 여행자들은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가 비냘레스 도착해서 이렇게 비 내렸으면 아무 것도 못했어” 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석회암 지대로 이루어진 비냘레스는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되어 신비로운 지형이 형성된 곳입니다. 바다 속에 있던 석회암 지대가 융기해 생성된 카르스트 지형인데, 마침 여행자 중 지구과학 선생님이 있어 이곳의 지형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냘레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산과 그 사이의 시골 풍경이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모두들 이곳의 풍경을 너무 좋아했으나, 한국으로 돌아 가야 하는 여행자의 귀국 일정 때문에 비냘레스에 1박 2일밖에 머무를 수 없어 너무 아쉬웠습니다. 비냘레스는 ‘마을’이 살아 있는 정겨운 곳이기 때문에 민박을 잡고 마을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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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선사 벽화 Mural de la Prehistoria

높이 160m, 폭 120m의 벽화. 형형색색의 이 벽화는 피델 카스트로가 벽화를 남기기로 결정한 뒤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비힐드 곤살레스가 인근 주민들과 함께 그렸다고 합니다. 모고테의 암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덧칠하는 과정을 거쳐 5년 만에 벽화를 완성했습니다. 벽화를 그리기 전 비나 바람에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면 세정 작업과 배수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벽화에는 암모나이트, 해양 파충류, 공룡 등 인류의 진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28사진: 박영숙


비냘레스 계곡 Valle de Viñales

삐나르 델 리오 주 오르간 산맥 자락에 있습니다. 계곡과 주변 지역은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2월에는 유네스코에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국가 기념물이기도 합니다. 계곡에는 인디언 전통 형태의 가옥들도 있고 코끼리 모양의 계곡 모고테, 황소 모양의 모고테 형제가 있습니다. 모고테 주변은 1 억 년 전 바다 속에 있던 석회암 지대가 융기해 생성된 카르스트 지형입니다. 계곡이 매우 아름다워 일정 중에 방문하길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였습니다. 

29사진: 이길보라



인디오 동굴 Cueva del Indio

비냘레스에는 빗물이 땅 틈새로 흘러 들어가 형성된 크고 작은 동굴들이 많습니다. 인디오 동굴도 이렇게 형성된 석회암 동굴로, 1920년 발견 당시 인디오들의 해골과 유골이 있었기 때문에 인디오 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인디오들이 스페인 침략자들의 박해를 피해서 숨어 지내던 곳으로 추정된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머리나 코에 맞으면 큰 행운이 함께 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인디오 동굴은 여행자들이 관람을 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입구에서 소정의 입장료를 받습니다. 입장료에는 음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유명한 피냐 콜라다. 파인애플 주스와 럼, 시나몬 가루를 섞은 칵테일입니다. 인디오 동굴 안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이곳에는 보트가 다닙니다. 12명 정원인 보트에 반, 반씩 나눠 인디오 동굴을 빠져 나왔습니다. 쿠바의 먼 옛날을 떠올릴 수 있게 상상력을 더해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30사진: 이길보라



시가 농장 방문

트리니다드 중심에서 말과 마차를 타고 시가 농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싶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시가 농장을 둘러 보기로 했고, 마차를 타고 싶은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시가 농장까지 향했습니다.

시가 농장에서는 실제로 시가를 수확한 다음 건조하는 공간에 들어가 시가가 어떻게 재배되고 건조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시가를 말아서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31사진: 박영숙



까요 라르고 Cayo Largo

까요 Cayo는 쿠바 본토 섬이 아니라 카리브 해안의 작은 무인도 군집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쿠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바나의 바라꼬아 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프로펠러 형의 작은 비행기는 1시간이 소요되고, 까요 라르고에서 아바나로 향할 때 탔던 약간 크기가 더 큰 비행기는 약 4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까요 라르고는 무인도입니다. 아주 옛날에 원주민 인디오들이 살았으나 스페인 제국 이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되었고, 그 이후에는 쿠바 혁명 정부에서 이곳을 관광 수입을 위해 개발하여 현재는 많은 리조트가 위치해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까요 라르고와 캐나다 몬트리올 사이에 직항이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직항이 있어 유럽과 캐나다에서 휴양을 목적으로 온 관광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동양인 여행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 위치한 모든 리조트는 국영이며, 이곳의 여행자들은 모두 카리브 해에서 휴양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옵니다. 바다는 너무 아름답고 해안선이 매우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백사장의 모래 또한 너무 보드랍고 곱습니다. 물론 이곳에 위치한 리조트 모두 올인클루시브 시스템이기 때문에 리조트의 불편함은 느껴지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그 정도가 심했던 바라데로보다는 까요 라르고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덜 했습니다. 날씨 또한 우리가 쿠바에 머무르는 내내 비가 오고 구름이 꼈는데, 까요 라르고에 머무르는 일정 동안 해가 쨍쨍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자들 모두 바다에서 그동안 날씨 때문에 아쉬웠던 마음들을 좀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32-2사진: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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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영숙


코디 및 진행을 맡은 한,쿠바 교류협회 정호현, 윤초원

그리고 쿠바뚜르 여행사 가이드 오마르 아저씨

오마르 아저씨는 쿠바 뚜르 국영 여행사의 가이드로서, 우리와 두 번의 짧은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오마르 아저씨가 쿠바인으로서의 경험과 자신의 인생 경험을 살려 가이드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한쿠바교류협회의 정호현 감독님은 한국인으로서 이해하고 느끼는 쿠바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쿠바인으로서 그리고 쿠바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쿠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행자들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이 두 명이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대답해 주었으므로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를 맡은 오마르 아저씨의 경우는 여행사 가이드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일이 영어 교사였기 때문에 자신이 공무원으로서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다니며 여행자들과 많이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34-1사진: 이길보라


이번 쿠바 여행은 한쿠바교류협회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전체 여행의 코디와 진행을 맡은 정호현 감독님과 윤초원 대리가 함께 했습니다. 그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쿠바 전문가로서 그녀들의 삶을 통해 본 쿠바는, 자유여행과는 분명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36사진: 박영숙


이번 쿠바 여행의 묘미!

이번 쿠바 여행의 묘미는 바로 민박이었습니다. 민박을 통해 만난 현지인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쿠바를 몸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쿠바는 2015년 미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 폭발적으로 관광객이 증가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호텔은 한정되어 있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쿠바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현지인의 민박에 머물게 됩니다. 여행사에서도 그렇게 숙박 시설을 잡고 있습니다. 쿠바에서 현지인의 집에 숙박하는 것은 쿠바를 또 다르게 만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간혹 당혹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35-2사진: 이길보라

오늘 남녘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함께 쿠바 여행을 다녀온 한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가 쿠바를 잊을 때 즈음 메일을 보내옵니다. 그의 메일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쿠바가 그리워집니다. 그때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 우리가 만났던 쿠바.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가 받았던 문화 충격들. 사회주의, 사회주의 혁명, 혁명 정부, 체제, 정치, 성 문화, 자유로움, 결혼, 일부일처제, 살사와의 또 다른 만남. 그리고 그 틈에서 우리가 만났던 희망.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마치 꿈만 같습니다. 로드스꼴라와 함께 했던 여행 덕분에 또 다른 쿠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만간 곧 다시 가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챠오! 쿠바! 

last사진: 박영숙last2 사진: 박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