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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노이마
2014.06.06
프노이마 2014.06.06
말머리(선택)  

도버에서

 

한국에서 떠나 영국에 도착한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고 내일이면 벌써 20일 여행이 끝나. 아직 돌아가려면 한참이 남았는데 그리운 것들이 참 많네. 요즘 나는 여행을 하면서 나를 자주 돌아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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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밤바다를 산책했어. 저 멀리서 등대 불빛이 돌아가고 있었고 파도 부서지는 소리, 걸을 때 마다 발밑에서 부딪히는 자갈 소리가 좋았지. 가만히 앉아 멍하니 있을 때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다냄새는 또 어떻고. 조용한 도버의 밤바다에서 복잡했던 생각을 많이 정리했던 것 같아. 그 순간에 머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숙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네. 도버의 밤바다는 내게 좋은 추억이 될 거야.

 

2011. 5. 31. 프노이마가.

이 한장의 사진.JPG Chatsworth House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의 촬영지로 유명한 체스워스 저택(Chatsworth House)은 실제로 데번(Devon)이라는 공작가문의 집이었다. 왕을 초대하기 위해 만든 방이 있을 정도로 화려한 저택도 저택이지만 걷다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갈 것 같은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더욱 끌었다. 잔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중정모를 쓴 백발의 할아버지가 박자를 맞추며 뮤직박스를 돌리고 있었다. 나무와 종이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어린 아이들을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점심을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는 뮤직박스 앞으로 갔다.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는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음악이 끝나고 박수를 치자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윙크를 날리곤 다음 곡을 시작했다. 영국에서 만난 가장 멋있는 젠틀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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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봐도 가고 싶지? 세븐 시스터즈

라파엘 

우리는 20일 여행의 마지막을 영국 남쪽에 있는 Eastbourne에서 마무리 했다. 아침 일찍 2층 투어 버스를 타고, 푸른 들판에 내렸을 때는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었다. 스마트폰의 나침반을 켜고 남쪽을 찾아 가던 중 많이 맡아 본 익숙한 바다 냄새가 밀려왔다. 안개가 자욱이 낀 바다에 작은 빨간 등대가 있었고, 그 등대는 나에게 묘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안개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궁시렁 거리고 있을 때 쯤 신기하게도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햇빛이 비추며 내 앞에는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던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끝이 안 보이는 하얀 절벽,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들판, 에메랄드 빛깔의 투명한 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장면 속에 들어와 있었다. 영국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말하라면 세븐 시스터즈를 말할 것이다.